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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 설교일2021-02-28
  • 성경본문마태복음 21:23-32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2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8.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에게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이 가장 소중할까? 아마도 사람마다 조금씩 생각이 다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일이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구원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예수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지만,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예수 믿는 일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꾸준히 읽으면서 그런 사실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또 한 번 확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21:23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그들이 묻는 이런 일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일뿐만 아니라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의 상을 뒤엎고, 비둘기파는 사람의 의자를 뒤엎은 그 일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일들은 다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의 허락을 받고 하는 일들입니다. 세상에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누가 감히 성전 안에 들어와서 자판을 깔고, 장사하는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다 허락을 받고 합법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 일을 못 하게 하니깐! 그래서 그들이 묻는 것입니다. 도대체 너는 누구의 허락을 받고, 이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이냐? 무슨 권위로 너가 이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이냐? 사실 묻을 만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으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메시아로, 하나님께로 주어진 권위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권위로 가지고 내가 이렇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 종교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니 어떤 하나님이 자기 집에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고, 기물을 파손하고, 그런 일을 하도록 시켰겠느냐! 그것이 말이나 되느냐! 그래서 아마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자라고 아마 몰아갔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그런 의도를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주 지혜롭게 그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마태복음 21:24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나도 한 가지를 너희들에게 묻겠다. 내 질문에 답을 하면, 나도 내게 물은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겠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시는 질문이 세례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냐? 라고 묻습니다. 쉽게 풀어 설명하면 세례요한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그냥 자기가 세례를 주고 싶어서 자의적으로 세례를 준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세례를 준 것이냐? 그렇게 묻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답변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 그것은 세례요한이 자의적으로 세례를 준 것입니다. 자기가 세례를 주고 싶어서 세례를 준 것입니다.’이렇게 답변하면 참 좋겠는데 그렇게 답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3:5~6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지명을 이야기합니다. 예루살렘, 온 유다, 요단강 사방에서 이 표현은 우리식으로 하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든 사람들이 나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 두 명이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나와서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세례요한을 선지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도 세례요한이 선지자냐? 아니냐를 놓고 자기들끼리도 많은 논쟁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주는 세례를 금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세례요한의 세례는 세례요한이 자의적으로 세례를 준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답변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이 명하셔서,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세례를 준 것이다. 그렇게 대답하면 그러면 너희들은 왜? 회개하고 세례를 받지 않았느냐? ? 세례요한이 하는 말들을 너희들은 따르지 않고, 믿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도 없고, 저렇게 대답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는가? 하고 내린 결론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세례요한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사람으로부터 왔는지,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깐 예수님이 그러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들에게 답변하지 못한다. 그러시면서 한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큰아들에게 이야기하기를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 그랬더니 큰아들이 네! 아버지! 그렇게 할께요! 그렇게 대답을 해놓고는 포도원에 가지 않았다. 둘째 아들에게도 아버지가 이야기했다. 아들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해라! 아들이 아버지! 싫어요! 저는 포도원에 가서 일하지 않을 겁니다. 처음에는 그렇데 대답을 했는데 나중에는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다.

너희들 생각에 이 두 아들 중에 정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아들은 어떤 아들이라고 생각하느냐? 여러분들은 두 아들 중에 어떤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아들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둘째 아들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똑같이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어떤 사람들을 비유하는 말씀인가? 첫째 아들은 종교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이고, 둘째 아들은 그 종교지도자들이 평소에 죄인처럼 여겼던 세리와 창녀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여서 말합니다. 이 세리와 창기들이 너희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먼저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너희들보다 세리와 창기가 먼저 된 자들이 될 것이다. ? 그래야 됩니까?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마태복음 21:3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요한이 와서 너희들에게 옳은 길을 가르쳤고, 옳은 길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들은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세리와 창녀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를 못한 것이고 그리고 끝까지 뉘우치지 않은 것일까? ! 두 아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첫째 아들에게 말합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 네 아버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안 갔습니다. ? 안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간 것인지? 못 간 것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려고 했던 의도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만약 이 율법을 지킨다면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 율법을 지키겠느냐? 그랬더니 모두가 다 지키겠습니다. 큰 아들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기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놀고만 있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율법을 지키려고 많이 수고하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처음부터 인간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것을 시인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을 증명해주는 사건이 무엇이냐?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고 그들이 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잘 지켰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될 수가 없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겠습니까! 그들이 내린 결론도 똑같은 결론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우리가 이 처지가 되었구나! 그들도 인정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와서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똑같이 이런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우리는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 그래서 율법을 다시 정비하고, 마을마다 회당을 세워서,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겉으로 보면 그들의 잘못을 뉘우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뉘우친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잘못 뉘우친 것입니다.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그것을 그들은 다시 한번 해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그들을 향해서 그렇게 질타를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처음부터 안 되었던 그 일을 왜 이제와서 또 하겠다고 하느냐! 이제 그것으로는 안 된다. 이제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종교지도자들이든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의 세례를 받고, 그리고 예수님이 가져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드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옳은 길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이 말합니다. 아니 우리는 율법을 잘 지키는 자들인데 우리가 무엇을 회개할 것이 있느냐? 아니 우리가 율법을 잘 지켰는데 회개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래서 그들은 회개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복할 죄가 없기 때문에 자복하지 않은 것이고, 세례요한의 세례도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자기들의 죄인 됨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것은 유대인의 대부분도 그렇지만,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어떤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었냐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하나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어느 정도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모두가 다 구원을 받는다.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세례요한이 아주 실날하게 비판을 합니다. 아주 충격적인 말을 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3:9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것보다 충격적인 말이 있겠습니까!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이 얼마나 큽니까! 그것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이 돌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하나님 앞에 자복할 것인가? 내가 하나님 앞에 자복할 죄가 무엇이 있느냐? 그것을 생각하고 그런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어라!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 종교지도자들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장로들은 정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래도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가장 이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럴만한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가장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이해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가장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사실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끝까지 이런 핑계 저런 이유를 되면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책잡을까? 그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합니까?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이런 생각을 우리가 하게 됩니다.

그런 것에 비해서 우리는 너무 예수를 쉽게 믿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보다 율법적인 지식이 더 많아서도 아니고, 그들보다 신앙의 열심히 커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이렇게 쉽게 예수를 믿은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이름을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꺼리김이 없이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냥 그 이름을 들으면서 믿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었을 때도 복음의 이야기를 우리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냥 그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예수 믿은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우리는 고백을 하는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것은 둘째 아들의 순종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쉽게 예수를 믿는 것은 너희들이 들은 복음에 대해서 그 말씀에 대해서 너희들이 순종했기 때문이다. 순종이라고 하는 것을 지금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받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예수 믿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생기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어 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해서 믿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믿음이 계속 성장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갈대 우르를 떠났던 그 단 한 번의 순종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순종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많은 사건에 아브라함이 즉면하게 됩니다. 정말 순종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여러 번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순종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100세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순종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만한 그런 큰 믿음이 그때 생긴 것입니다. 수많은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런 큰 믿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큰 믿음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 복입니다. 아멘! 우리들의 신앙에 가치 중에 가장 중요한 신앙의 가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면 우리들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했는지 평가받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하느냐? 고린도전서 3:12~15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우리가 평생 주님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평생 신앙 생활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일도 많고, 봉사한 일도 많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주님 앞에 가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을 불 가운데 집어던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 속에서 불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 불 가운데 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께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것들은 그 불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고, 그냥 내가 좋아서 한 일!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 그것이 물론 다 좋은 일이고, 선한 일이고, 주님의 일이 수도 있습니다. 다 금과 같은 일! 보석과 같은 일! 그렇게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은 불 속에 던졌을 때 하나도 남는 것이 없이 다 타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에 여러분들 그래도 우리가 평생 오랫동안 신앙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그런 자부심이 있습니다. 지난 일을 보면 내가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 앞에 이렇게 헌신했고, 좋은 일도 했고 나름대로 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갔었을 때 그것을 몽땅 불 속에 던졌는데 하나도 남는 것이 없이 다 타버리고, 없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 상황을 가리켜서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 구원을 받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 타버리고, 오직 남는 거 하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것! 하나! 그것 하나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늘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우리가 알아야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일이 필요한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순종하는 것은 사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순종 할 수 있는 힘을 주셔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일을 항상 같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경험해 보면 알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순종하는 삶을 살다 보면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그런 욕구! 기도를 하고 싶은 욕구가 막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욕구는 우리 내면에서 우리가 만들어 내는 욕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욕구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예전에 그런 것을 못 느꼈는데 최근에 와서 말씀이 읽고 싶어지고, 설교 말씀을 듣고 싶어지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하면 어쩌면 여러분! 멀지 않는 장래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멀지 않는 장래에 여러분들 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나님이 순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마음에 미리 준비시키는 그런 뜻에서 우리 마음속에 말씀에 대한 욕구와 기도에 대한 욕구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만 살려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 하는 일에 대해서 권위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 복음 전하는 일에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구역을 돌보면 그 구역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권위가 생깁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거나 가르치는 일을 할 때도 우리에게 권위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자녀들 앞에서도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있어서도 부모에게 권위가 주어져서 권위가 생깁니다. 자녀들이 부모가 많은 것을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그 부모를 무시하거나, 쉽게 대하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가 부모님으로부터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구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가 주님을 더 많이,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지금보다는 더 큰 믿음을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가 무슨일을 하던 주님의 일을 하기만 하면 거기에 권위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이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이런 은혜를 우리들도 말씀의 순종함을 통해서 그런 은혜들을 얻게 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일로 여기게 하셔서 우리 모두 주님의 순종하는 종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복을 받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더 큰 믿음도 얻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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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우리는 무엇을 버렸는가?관리자2021-01-17
106부자 청년의 질문관리자2021-01-10
105성령이 답입니다관리자2021-01-03
104결혼과 이혼관리자2020-12-27
103용서관리자2020-12-20
102길 잃은 양의 비유관리자2020-12-13
101천국에서는 누가 큰 사람입니까?관리자20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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