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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나중은 바뀔 수 있다
  • 설교일2021-01-24
  • 성경본문마태복음 20:1-16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것인지 사실 성경에서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이유는 천국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마치 더러운 걸레로 방을 닦는 것과 같은 그런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천국이란 눈물과 사망이 없는 곳이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곳이 없는 곳이고, 천국의 모든 길은 황금으로 되어 있고, 그밖에 모든 것은 에메랄드, 사파이어, 진주 같은 각종 보석으로 되어 있다. 그 정도의 설명이 전부입니다.

그러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속성이나, 특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을 하시고, 또 너희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천국에는 꼭 들어가야만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천국에는 꼭 들어가야만 된다. 이런 말씀을 성경에서 계속 반복되어서 나옵니다.

재물이 많은 젊은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갈 때 베드로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그런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어떤 보상이 있겠습니까?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버린 것이 있는 사람은 그 버린 것의 몇 배를 받게 될 것이고, 영생도 상속하게 되리라! 그러시면서 제자들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주님이 하십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19:30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궁금한 것은 도대체 저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먼저 된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고, 나중 된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또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차이가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런데 사실이 우리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의미도 우리는 분명하게 알지를 못하고, 나중 된 자와 먼저 된 자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천국이라고 해도 누구나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먼저 된 자가 있고, 나중 된 자도 있다. 차별이 아니라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천국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말씀의 내용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이제 좀 더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생각해보려는 말씀은 어떻게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가? 도대체 그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은 포도원 주인이 자기 밭에서 일할 일꾼을 찾아 나서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마태복음 20:1~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부터 일꾼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마침 그 새벽에 일이 없을까? 일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이 일할 마음이 있느냐? 그러면 내가 하루에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줄 터니 우리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해라! 그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침 일찍 새벽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 우리 시간으로 이야기하면 새벽 6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데나리온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 평상적으로 노동자가 하루 받을 수 있는 임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벽 6시에 만난 일꾼만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할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3~5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저 시간은 6시간을 더해야 오늘 우리들의 시간과 같은 시간이 됩니다. 그러니깐 포도원 주인이 아침 9시에 나가보고, 12시에도 나가보고, 오후 3시에 나가보니깐 그래도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어디 일거리가 없을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그들도 다 자기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라! 하고 일할 기회를 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마태복음 20:6 말씀입니다.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십일시라고 하면 6시를 더하면 십칠시가 되는 것이죠! 십칠시는 오후5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후 5시에도 일거리를 찾지 못해서 놀고 있는 사람을 본 주인은 너는 도대체 이렇고 있느냐? 저를 일꾼으로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냐! 그러면 너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해라! 그래서 오후 5시에 일거리를 찾고 있던 사람에게도 일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후 6시가 되어서 하루 일과 끝나게 되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종들을 불러서 일꾼을 한자리에 다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품삯을 나눠주는데 새벽 6시부터 온 순으로 차례대로 나눠 주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주인은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만 일한 사람부터 품삯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준 것입니다. 오후 3시에 온 사람, 12시에 온 사람, 오전 9시에 온 사람, 새벽 6시에 온 사람은 각자가 우리들은 조금 더 받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기대를 가지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 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도 그 사람들과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우리도 그런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모든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조금은 더 받을 것을 기대했던 그 사람들이 일제히 그 주인을 원망하고 나섰습니다. 원망했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마태복음 20:11~1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요지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어떻게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 일한 사람하고, 새벽부터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우리들하고, 동일한 임금을 주실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공평한 처사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주장에도 사실은 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새벽 6시에 온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 일한 사람과 무려 12시간을 더 일한 것입니다. 일을 12배나 더했는데 똑같은 임금을 준다. 누가 그것을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주인은 도대체 그 일꾼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이라고 해서 그렇게 주면 사람들이 불공평하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겠습니까! 그런데 왜? 주인은 그런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일까? 혹시 새벽 6시에 온 사람이나, 오전 9, 12, 3시에 온 사람들은 일찍 일을 하긴 했지만, 주인이 안 보면 슬슬 놀면서 일을 슬슬 한 사람들이고, 오후 5시 온 사람은 딱 1시간만 일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열심히 몸을 사리지 않고, 아주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일한 양으로 보니깐 새벽 6시에 온 사람이나, 12시에 온 사람이나, 오후 5시에 온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서 그래서 그냥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준 것일까? 먼저 주인의 대답을 우리가 직접 들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0:13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처음부터 너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내가 우리 포도원에 와서 일을 한 것이다. 나는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내가 약속대로 했는데 무엇 때문에 원망하느냐! 이것이 주인의 대답입니다. 오전 9, 12, 오후 3시 온 사람들은 어떠냐? 마태복음 20:3~4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마지막 줄을 보시겠습니다.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이 말이 중요합니다. 오전 9, 12, 오후 3시에 온 사람에게는 뭐라고 약속을 하냐면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겠다. 이렇게 약속합니다.

그것은 우리 포도원에 새벽 6시에 온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는 하루 품삯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들보다 3시간 늦게 왔고, 6시간 늦게와서 일을 했기 때문에 똑같은 임금을 줄 수 없지 않겠느냐! 그 한 데나리온을 기준으로 해서 너희들에게 상당하게 그렇게 내가 너희들에게 임금을 주겠다. 품삯을 주겠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니깐 오전 9, 12, 3시에 온 사람은 다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자기들은 한 데나리온보다는 적게 받겠구나!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도 다 한 데나리온씩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사실 원망은커녕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새벽 6시에 온 사람이나, 오전 9, 12, 3시에 온 사람이나 왜? 처음부터 주인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와서 말합니다. 새벽 6시에 만난 일꾼에게 일할 마음이 있느냐? ! 그럼 하루 품삯 한 데나리온을 줄 테니 우리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그럴 때 저는 한 데나리온으로는 일할 수 없습니다. 더 주세요! 두 데나리온이라면 하겠습니다. ?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오전 9, 12, 3시에 온 사람들은 주인이 상당하게 주리라! 아니! 주인님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상당하게 주리라! 그렇게 말씀 하시지 마시고, 정확하게 얼마나 줄 것인지 그렇게 분명히 말씀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못 갑니다. ? 그러지 않았을까? 그 당시의 사회는 지금과 같이 직업이 다양하지 않았던 시대이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습니다. 직업이 다양해야 일자리도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데 일할 사람은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 데나리온을 받든, 반 데나리온을 받든 일만 할 수 있으면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니 주인에게 조건을 이야기하거나 무엇을 제시할 입장이 안 되는 것입니다. 상당하게 주겠다. 그것도 감사한 것이고,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더욱더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그들에게 말하는 두 번째 대답을 우리가 들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0:14~15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주인의 대답은 그것이 내 뜻이다. 내가 그렇게 주고 싶어서 그렇게 준 것이다. 아니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데 그것이 너희들과 무슨 상관이냐! 그것이 나를 원망할 수 있는 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마음은 일한 시간의 비례해서 임금을 준 것이 아니고, 새벽 6시에 온 사람이든, 12시에 온 사람이든, 오후 5시에 온 사람이든 하루 살려면 하루 품 삵 한 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시간과 관계없이 어느 시간에 왔던지 그 가정이 하루를 살려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 한 데나리온씩을 준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은 주인입니까! 그런데 그런 주인을 원망하고, 마치 공평하지 않는 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주인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태복음 20:16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여기서 나중 된 사람은 오후 5시에 온 일꾼을 말하는 것이고, 먼저 된 사람은 새벽 6시에 온 일꾼을 말하는 것입니다. ? 이것이 뒤바뀌게 되었느냐? 새벽 6시에 온 일꾼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새벽 6시의 일꾼으로 뽑혔다. 이것은 그 일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더 할 수 없는 감사할 일입니다. ? 그렇지 않았더라면 새벽 6시부터 오늘은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 오늘은 나를 일꾼으로 써주시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하루 종일 염려와 걱정 속에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새벽 6시부터 일꾼으로 뽑혔으니깐!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일거리는 없고, 일할 사람은 많은데 품삯을 깎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품삯을 다 준다고 하니깐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물론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 수는 있지만, 그러나 내가 일하는 그 순간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놀고 있는 많은 내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저 일하는 자체가 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포도원 주인의 은혜고, 모든 것이 사실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한순간에 바뀌게 됩니다. 그 바뀌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만 일한 사람에게 주인이 품삯을 한 데나리온을 주는 그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부터 이들의 마음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원망의 마음으로 주인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일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고민하면서 오늘도 내가 일하지 못하면 우리 가정이 하루를 굶게 될 텐데 이렇게 조바심을 내면서 염려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감사한 거지! 그렇게 일했던 그 마음이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주인님! 내가 새벽 6시부터 와서 뜨거운 태양 볕에서 종일토록 수고하며 고생했는데, 이렇게 내가 열심히 수고하고, 고생하며 일한 나에게 겨우 품삯을 한 데나리온밖에 안 주십니까! 1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그렇게 주시면서, 새벽 6시에 온 사람은 마치 한 데나리온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한 데나리온보다 더 많은 품삯을 받을 그런 당연한 권리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원망하게 되면, 바로 그런 사람이 먼저 되었다고도 나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12제자에게도 동일하게 예수님이 적용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입장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할 때는 바꿔서 이야기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다. 그러면 먼저 된 자가 누구를 생각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12제자를 염두해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12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많은 재물이 있지만, 버리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던 그 청년과 비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확실히 먼저 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버린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훗날 제자보다 더 많은 것을 버린 사람이 나타나면 그러면 제자들은 나중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먼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뭔가를 버린다고 하는 것은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마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고, 내가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12제자라도 나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먼저 된 자는 누구고, 나중 된 자는 누구겠습니까? 우리들도 보면 새벽 6시부터 예수 믿은 사람이 있고, 오전 9시에 예수 믿은 사람이 있고, 오후 5시가 돼서야 예수 믿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태 신앙!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아마 새벽 6시에 부름 받은 일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들의 입장에서 오후 5시에 전도 받아서 우리 교회에 나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봉사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먼저 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열심히 봉사하는 뜨겁게 신앙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나보다 예수 믿은지 훨씬 후에 믿은 사람들인데 나보다 먼저 안수 집사가 되고, 나보다 먼저 권사가 되고, 나보다 먼저 장로가 되었다는 것은 어떻십니까? 마음이 불편하세요! 아니 내가 이 교회를 언제부터 나왔는데,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 이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했는데 그런 자기를 몰라 주고, 이제 교회 나오지 얼마 안 된 사람을 권사로, 집사로 뽑아주다니! 그런 교인들이 섭섭하십니까? 그런 교회가 섭섭하십니까? 그러면 마치 새벽 6시에 나온 일꾼들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을 보니깐 젊은 날! 놀 것을 다 놀고, 재미 볼 것을 다 보고 그리고 이제와서 예수를 믿는데 나는 너무 일찍부터 예수를 믿어서 놀아 볼 것도 놀아 보지 못하고, 세상에서 즐겨 볼 것도 즐겨보지 못하고 그래서 그 사람을 보니깐 그 사람이 부럽고, 일찍 예수 믿은 것이 원망스럽다는 느낌이 드십니까? 그것도 새벽 6시에 나온 일꾼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6시에 일꾼을 뽑혀서 염려 걱정하지 않고 하루 종일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다고 하는 그 자체가 이미 보상입니다. 누구보다도 일찍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왔던 그 자체가 보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고 하는 그 자체가 보상이지! 뭐가 보상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는데 우리가 받을 보상이 무엇이 있나요? 이렇게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주실 수 있는 말씀이 그것 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사람들이 많이 있느니라!

여러분! 우리 신당중앙교회 성도님들은 나중 된 자로서도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도 먼저 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그런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헌신한 일들을 봉사한 일들을 마치 우리의 공로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거나, 여기지 않도록 우리들의 마음을 지켜주시옵소서.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낼 수 있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될 수 있도록 긍휼의 은총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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