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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버렸는가?
  • 설교일2021-01-17
  • 성경본문마태복음 19:23-30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2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 가는 것보다 어렵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그 이유나, 배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어느 날 젊은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행에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내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그런 계명을 지키라!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 그런 계명들은 다 시켰습니다. 아직도 제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부족한 것이 있지! 내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쫓으라! 그러나 성경은 이 젊은이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갔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젊은이가 이렇게 말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선생님! 내게 부족한 것이 내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그 일 한 가지 밖에는 없으니까? 제게 부족한 것이라는 것이 그것 하나입니까? ! 그렇다면 제가 예수님 말씀대로 제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쫓겠습니다. 그렇게 쿨하게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그 청년이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재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젊은이가 재물이 많지 않았더라면 쉽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일까? 어쨌든 성경은 이 젊은이가 재물이 많음으로, 근심하며 돌아갔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는 것은 갈등하며 돌아갔다. 하는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젊은이가 갈등하는 것입니까? 영생도 얻고 싶고, 많은 재물도 가지고 가고 싶고 그래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젊은이가 정말 영생을 얻고 싶어 했던 본심이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재물을 가진 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계명도 열심히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인간의 욕심이 이 젊은이의 문제만 아니고,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으면 중국의 진시 황제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여러 지역으로 보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넓은 중국 땅을 그 누구도 한 번도 통일해보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그 진시황이 그 중국을 통일 한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것입니까! 그리고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황제의 자리를 그저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누리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그것이 사람의 욕심인 것입니다.

이 젊은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가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은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예수님의 마음과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제외하고, 나를 따르라! 이렇게 말씀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서기관이 자원해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그랬을 때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시면서 그 서기관의 청을 거절하셨던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근심하며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우시겠습니까!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자 그렇다면 문제는 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자가 돼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성경을 한 번 보겠습니다. 창세기 26:12~13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그냥 부자가 아니고,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러나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는 그 논리라면 이삭의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큰 부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 한편으로는 감사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욥도 그 당시 사람들로 보면 재산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양만 7,000마리, 낙타가 3,000마리, 소가 600마리, 나귀도 500마리나 되었습니다. 욥 자신이 이야기했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이 욥에게 그렇게 많은 재물을 주신 것이 욥의 입장에서는 감사할 수 있는 일지만, 그러나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생각해보면 그 또한 부담스러운 일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부자라는 것에 대한 것도 명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다까지를 부자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어느 정도의 재물이 있어야 주님은 부자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그러나 성경에는 정확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는 그저 재물이 많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물이 가지고 있는 그 속성! 그 위험성 때문에 아마도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재물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속성이 3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인간의 대부분의 필요를 채워준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돈이 그렇게 해주는 속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필요를 대부분 채워준다. 그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많은 필요를 하나님으로부터 채움을 받지 않습니까! 돈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종이 되기 쉽지만, 돈이 많으면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주인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돈이 많으면 교만해질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러나 막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시면서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신명기 8:17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이것을 다 내 힘으로 얻은 것이다. 내 능력으로 산 것이다. 이렇게 교만해질 것을 염려하셨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8:13~14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첫 번째 염려는 그들이 교만해지는 것이고, 두 번째 염려는 그래서 하나님을 잊게 될 것을 하나님이 염려하셨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만해질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에서 누가 큰 자냐? 어린아이처럼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자들이 천국에서는 큰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했다. 내 능력으로 살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주인알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10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돈을 사랑하게 될 가능성이 많고, 믿음에서 떠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돈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난 자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이지! 돈을 사랑하고, 돈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서, 제자들이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19:25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아니 저 젊은 청년처럼 저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리고 부자라는 이유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도대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주님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할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의 의미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나는 율법을 잘 지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선한 일을 많이 하면,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다는 그 생각!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은 어떤 선한 행위나, 자기의 노력으로 영생을 얻거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는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요한복음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그것은 부자도 상관이 없고, 가난한 자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마치 낙타도 들어갈 만큼 영생의 문이 크고 넓다는 것입니다. 낙타가 들어갈 수 있다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벌써 그 말씀을 하실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해서 그 보혈의 공로로, 그 십자가의 공로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될 것을 벌써 머릿속으로 생각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아주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마태복음 19:27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질문도 질문 나름입니다. 지금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님! 저희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랐는데 그런 우리들에게 보상이 있다면 어떤 보상이 있겠습니까? 사실 이렇게 주님에게 묻는 것은 사실 낯간지러운 질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도 그 젊은 청년처럼 재물이 많았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정말 따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 젊은 청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재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베드로는 쉽게 예수님을 따랐을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재물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베드로에게는 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복이고, 무엇이 화인가는 사람이 판단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가끔 제가 어떤 분을 전도하거나, 교회에 봉사를 하라고 권유하게 될 때 가끔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지금 하는 일이 꼬이고, 어렵습니다. 일이 해결이 되고 나면 그때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사업이 안정이 되면 그때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조금 더 내가 생각한 만큼 성공을 하면, 그때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교회에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이 안정이 되면 그때 봉사를 하겠습니다. 조금 여유가 생겨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그때 봉사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그렇게 되게 되면 상대적으로 버릴 것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어떻게 보면 일이 잘 안 되고, 사업이 좀 안 되고, 오히려 실패했을 때 상대적으로 버릴 것이 별로 없을 때 그때가 오히려 더 예수님을 믿기가 좋고, 교회에 봉사하기가 훨씬 수월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26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왜 그러느냐? ?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저런 사람들이 많은 것인가? 그 이유가 간단한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상대적으로 버릴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그 일조차도 우리들에게는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그런 우리들에게 보상이 있는 것입니까? 그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이 보상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9:29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두 가지 보상이 있습니다. 영생을 얻게 되는 보상도 있고, 내가 버린 것에 대해서 더 많은 것으로 되돌려 받는 그런 보상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로 하면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A라는 것을 버렸을 때 하나님은 내가 버린 A3배나, 5배로 보상해주실 때도 있고, 나는 A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B로서 나에게 보상을 해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모습이 되었던, 어떤 모양이 되었던 보상을 해주신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A를 버렸는데 똑같은 것으로 많은 것을 받은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욥입니다. 그는 양 7,000마리, 낙타 3,000마리를 한순간에 다 잃어버렸는데,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다 되갚아 주면서 2배로 주셨습니다. 양도 14,000마리가 되고, 낙타도 6,000마리가 되고 그렇게도 되돌려 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며 고넬료 같은 사람은 이방인이었지만,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힘쓰고, 백성을 많이 구제한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월급을 가지고, 백성들을 많이 구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백부장에게 무엇을 보상해주었으면 좋겠습니까? 구제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재물로 더 많이 복을 주신다든지, 보상을 주시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보상하지 않고, 오히려 고넬료에게 베드로가 너가 살고 있는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사람을 보내서 베드로를 초청해서 말씀을 들어라! 그래서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서 베드로를 모셔와서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면서 이방인으로서는 최초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것은 똑같은 것으로 되갚아 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좋은 것으로 되갚아 주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를 버리고, 둘을 버렸을 때 하나님은 내가 버린 것 이상으로 4배로 갚아주실 수도 있고, 6배로 갚아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다 내게 갚아주실 때도 있지만, 내게는 2개 정도만 갚아주시고, 그 나머지 한 4, 6개는 자식에게 갚아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 좋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생활을 하면 정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버린 것도 있고, 포기한 것도 있고 이런 것들이 있을 때 그것이 나에게만 보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상을 충분하게 받고 적절하게 받은 이후에는 그것이 자식에게도 그 보상이 물려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자식에게 투자하고, 자식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할 수도 있지만 방법이 그런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버리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을 주시는데 내게 주실 경우도 있고, 내게도 주시면서 자식에게도 주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이요! 삶이라고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순수한 동기로 그렇게 한 것 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꼭 보상을 해주시는 것일까? 우리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버린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포기한 것들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어떻게 받아 들으시냐? 그것이 주님을 사랑했다는 어떤 증거로 표현으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들어나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느냐? 그것은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버렸느냐? 주님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포기했느냐? 그것으로 들어나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는 하나님의 표현이 무엇이냐? 우리가 버린 것에 대해서 보상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보상해주시는 것으로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버린 것에 대해서 보상을 받을 때 단순히 더 많은 것으로 보상을 받았다고 하는 것으로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상을 받으면서 아! 하나님이 이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 그것을 깨닫는 것이 더 큰 보상입니다.

예를 들어서 창세기 22:1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하나 밖에 없는 100세 얻은 아들을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릴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이제 너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것을 알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표현했느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100세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제가 이만큼 사랑합니다. 라고 하나님의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나도 너를 사랑한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표현합니까? 그 이삭을 받지도 않고 오히려 양을 대신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하나를 드렸을 뿐인데 하나님은 육십만의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큰 민족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스케일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겨우 아들 하나를 드렸을 뿐인데 그 아들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고, 육십만의 아들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우리는 그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버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포기한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초대를 받아서 그 바리새인의 집에 가서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여인이 예수님에게 다가오더니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이 다 예수님의 발에 떨어졌습니다. 자기의 긴 머리카락을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닦아드리고, 거기에 향유를 붙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그 동네에서 평판이 좋지 않는 여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굉장히 불쾌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저 여인이 어떤 여인인지 알고 저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셨어야만 하는 것인데, ?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일까? 그런 분위기가 되다보니깐 그 분위가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고 이야기합니다. 잘 들어라! 저 바리새인이 나를 식사에 초대한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이 집에 왔을 때 발을 씻겨주지도 않았고, 손님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기름도 발라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의 눈물로 내 발을 씻겨주었고, 기름 몇 방울을 발라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내 발에 부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러시면서 누가복음 7:47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좀 더 쉽게 생각하면 주님께 받은 은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을 많이 사랑하게 되고, 주님께 받은 은혜가 많지 않다. 그것은 다 내 힘으로 한 것이고, 내 능력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버렸는가? 의 질문에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다 내 힘으로 살아왔고, 다 내 능력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충만해 있는 것입니다. 별로 받은 은혜도 없고, 하나님 언제 큰 주셨느냐! 다 내 힘으로 한 것이지! 그런 생각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정말 어렵게 우리에게 주신 이 물질의 복 때문에 오히려 우리들에게 근심꺼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이삭을 드린 만큼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얻게 된 우리의 구원과 영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더 깊이 깨닫게 되는 은혜를 주시고, 그 소중한 가치를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우리의 몸도 기억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신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우리의 삶 속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그런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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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천국에서는 누가 큰 사람입니까?관리자20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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