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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답입니다
  • 설교일2021-01-03
  • 성경본문스가랴 4:1-6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2.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3.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4.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6.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기독교의 교리 가운데 삼위일체 교리라는 아주 독특한 교리가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세 분인데, 동시에 그 세 분이 한 분이라고 하는 그런 교리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셋이 동시에 하나이고, 하나가 동시에 셋이 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그것이 말이나 되는 것이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것을 이해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설명도 100% 만족할 만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훼손한다는 비판과 함께 모두 다 이단으로 정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렇게 존재할 수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렇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삼위일체로 존재한다고 말씀을 하시면,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고, 설명할 수 없어도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도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그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우릭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이렇게 항상 우리들의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역사가들은 세계의 역사를 구분할 때 대부분 고대, 중세 그리고 근대, 현대 이렇게 4가지로 구분을 합니다만, 성경적으로 역사를 구분할 때는 하나님의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성령의 시대로 구분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시대를 우리는 흔히 구약의 시대라고 말하고, 성자의 시대는 복음의 시대라고 말하고, 성령의 시대는 복음 그 이후의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약시대든, 신약시대든 또 그 이후의 시대든 항상 함께 하시지만, 그러나 그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누가 그 일을 주도하시는 것에 따라서 시대적인 구분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천지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때도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셨지만, 천지창조와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 계획에는 성부 하나님이 그 일을 주도해 나가십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오면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구원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심으로 그 구원 계획을 성취 시키시고, 완성합니다. 그 일은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이지만, 그러나 성자 예수님이 그 일을 주도하게 되십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한 그 이후의 시대는 성령님께서 주도하시는 시대입니다. 주로 선교와 관련해서 성령이 주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가 끝나고, 선교의 시대가 접어들면서 세상의 종말 때까지는 주로 성령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그런 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되지만, 특별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스가랴의 말씀도 보기 드물게 구약에서 성경을 설명하고 계시는 아주 소중한 말씀입니다. 스가랴서에서 성경을 설명한 배경을 보면 B.C. 586년에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이나 포로 생활하게 됩니다. 70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그들이 70년 만에 돌아와서 보니깐 예루살렘은 정말 황폐해질 때로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어서 70년 동안이나 땅이 버려진 채로 있었습니다. 그 땅을 다시 개관해서 농사를 짓는 일도 벅찬 일이었는데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땅이 황폐진 것보다도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져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이고,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재건하자! 하는 것에 마음의 뜻을 모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전을 재건할 만한 충분한 인력도 없었고, 성전을 재건할 만한 자제도 없었고, 인부들에게 식량을 충분하게 공급해줄 만큼 식량도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여건과 형편이 먹고 살기도 급급했는데 성전을 재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가지고 시작했던 그 일이지만 결국은 성전을 재건하다가 중단하게 됩니다. 이렇게 1년을 지나고, 2년이 지났지만 아무도 우리 다시 성전을 재건합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형편에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다시 일어나서 성전을 재건합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스가랴 선지자가 하나님이 보여주신 하나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 환상은 성전 안에 있었던 금 촛대였습니다. ? 하나님이 뜬금없이 성전 안에 있는 황금 촛대를 내게 보여주신 것일까? 그 뜻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그때 그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스가랴 4:6에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성전 건축을 하다가 우리 형편으로는 절대로 성전을 재건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도 다시 성전을 재건할 생각을 못 하고 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되느니라!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성령이 답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전을 재건할 수 있겠는가? 그 답이 성령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 환상을 본 후 22년 만에 성전은 재건되게 됩니다.

이것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만 관련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 이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이렇게 느낄 때 성령이 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안 된다. 그래서 포기할 것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는 하실 수가 있다. 성령이 내 문제의 답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의 신앙생활과 오늘 기독교인의 생활이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보면 다른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성령입니다. 유대인의 신앙생활에는 성령님이 없었고,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에는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냐? 유대인들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도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 구약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 하나님이 주신 그 율법에 참된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의미를 모르고 왜? 그 율법을 주셨는지 목적도 모르면서 그 율법을 그냥 열심히 지켰지만, 결국에는 그 이유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려고 열심을 내고 또 내면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느냐?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성령님이 계셔서 성령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만약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성령을 의식하지 않고, 성령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유대인과 똑같은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역시 우리도 열심히 예수 믿는다고 노력하고, 힘쓰고, 애쓰면 결과적으로 누가 되느냐? 바리새인이 되고, 서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기독교의 시대, 성령의 시대에 살면서도 성령이 없어도, 성령이 함께하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크리스쳔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시대에 살면서도 유대인들처럼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성령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과 함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기차는 반드시 레일 위해서만 달립니다. 그것이 기차가 다니는 길입니다. 그런 것처럼 성령은 항상 말씀과 기도라는 레일 위로만 달립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통로가 말씀과 기도입니다. 물론 예배 가운데도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선교 가운데도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섬김 속에서도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찬양 가운데도 성령님이 임재하시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우리가 훈련되지 않으면 성령을 체험하는 것도 어렵지만, 성령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말씀과 기도로 성령과 함께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성경을 우리가 바르게 읽어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그런 성경 읽기가 되려고 하면,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제부터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려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풀어주시고, 해석해주시지 않으시면 제 지혜로는 이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성령님 내가 말씀을 읽을 때 깨달음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신 말씀은 제가 꼭 순종하겠습니다. 이렇게 먼저 기도를 하고, 그리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성경을 읽는 동안 성령께서 깨달음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읽으시면서 자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질문을 하면 성령님께서는 그 질문한 것에 대답을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대답을 주신다는 것 차제가 성령님께서 역사를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자꾸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답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반복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성령님이 내게 질문하시고, 성령님이 내게 답을 주십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을 읽는 것이 어렵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과 함께 성경을 읽는 것이고, 성경 읽는 일을 성령님께서 주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성경을 그렇게 읽는 것이 재미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님과 함께 성경을 읽는 것이고, 성령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처음 이 땅에 강림하실 때 그때의 사건을 여러분들은 다 기억하시죠!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이 합심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이 땅에 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기도라고 하는 것은 성령님을 초청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기도하는 그 자리에 성령님이 임재하시기를 우리가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함께하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기도 생활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말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기도!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주장하시는 그런 기도를 들을 수 있겠는가? 우선 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가 무엇인지부터 우리는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라고 하는 것은 내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서 내 소원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기도의 많은 내용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 하나님과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 대화할 수 있느냐? 그럴 때 기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라고 하는 것은 대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화의 핵심은 말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나의 소원! 그것만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말하는 것은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닙니다. 자기의 신세 한탄이 될 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하나님 앞에 요구하는 것이지! 그것은 기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항상 기도라고 하는 것은 대화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달라고 하는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대화의 내용 가운데 그런 내용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내 속에 있는 말을 하고, 그다음에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이 바로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만 하면 안 되고 기도를 한 후에 기도 중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금방금방 받을 수도 있지만, 기도한 후에 우리가 말씀을 읽게 되면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한 그 말씀에 대한 답을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얻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내가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화입니다. 물론 이것이 이제 아주 익숙해진 사람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도 우리가 들을 수가 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말씀과 기도나 다 마찬가지지만, 은혜를 받았다는 표현입니다. 특히 말씀을 듣고 내가 은혜를 받았다.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그 표현은 내가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의 깨달음을 주셨다. 그 깨달음의 은혜를 말할 때 은혜받았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라는 말을 아무 때나 사용하다 보니깐 말씀을 재미있게 들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이 후련 해졌다. 그런 자기만족을 가지고 은혜받았다고 하는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은혜받는 것하고, 말씀을 들어서 좋았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반드시 말씀에 은혜를 받으려면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흥회를 할 때 부흥 간사님들이 오랜 시간 설교를 해야하기 때문에 청중들이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재미있게 합니다. 재미나게 말씀하시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재미나게 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재미의 끝에는 반드시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내가 기도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육신도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안 좋은 공기를 마실 때도 있고, 안 좋은 음식을 먹을 때도 있고 그래서 건강이 조금 나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여러 가지 조치를 합니다. 목이 안 좋으면 이비인후과에 가서 조취를 취하기도 하고, 속이 안 좋으면 내과에 가서 치료를 받습니다. 그때그때 마다 문제가 생기면 치료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어느 순간에 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활도 패턴이 똑같습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여러 가지 안 좋은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눈으로 보게 되고, 듣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다 영적인 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그 안 좋았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에 쌓여 있던 그런 안 좋은 것들을 기도하면서 그것을 내보내게 됩니다. 그것들이 다 나가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오게 됩니다. 마치 호흡하면,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서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듯이 영적인 건강도 똑같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나쁜 것들은 다 배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도 있고, 우리가 기도를 해야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하고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임재!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 생활을 하지 않으면 성령이 너희들과 함께하실 수가 없고, 성령의 임재를 너희들이 느낄 수가 없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너희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생활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인 기도를 드릴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은 기도의 내용도 필요하고, 사실 기도의 순서도 필요합니다. 이런 절차를 다 지켜가면서 기도 생활을 하면 훨씬 더 효과적인 기도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준비가 필요합니다. 모든 일에는 준비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급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하기 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찬양을 반복해서 여러 번 부른다든지, 특별히 자기가 좋아하는 찬양이 없을 때에는 주로 보혈과 관련된 찬양을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르는 것입니다. 찬양을 여러 번 부르다 보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기도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집니다. 그러면 놀랍게 찬양하면서 기도를 준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도에 방해가 되는 여러 가지 잘못된 것을 지적해 줍니다.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내가 찬양이 끝난 다음에 기도해야 하는데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내가 누구와 잘못한 일이 생각이 난다든지, 잊고 있었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일을 생각하든지,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벌써 그 생각이 났다는 것이 성령이 내게 임재하신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기 위해서 그렇게 기도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생각나면 금방 기도로 들어가지 말고, 그 부분을 먼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보여주시고, 생각나게 해준 것을 놓고 하나님 내가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제가 한 달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하나님이 가르쳐주셔서 제가 그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합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다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내가 감사한 일들이 무엇이 있었나?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하면서 구체적으로 감사라고 느껴지는 것들을 다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고백을! 그것도 내가 무엇이 감사한가를 생각할 때 그것이 내 생각이 아니고, 성령께서 내게 어떤 것이 감사한지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생각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할 때는 이런 것들만 감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기도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면 전혀 내가 감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감사한 일었구나!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님이 함께 하셔야 성령님이 내 기도를 인도해 가셔야만 기도가 바른 기도가 되고, 하나님 받으실만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한 후에는 이제는 내 기도를 먼저 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라! 중보 기도해라! 왜냐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면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기도에 대해서 굉장히 객관적으로 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욕심 때문에 막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훈련을 할 때는 내 소원을 많이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 다른 사람의 어려운 문제를 객관적으로 기도하는 훈련부터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느껴지고, 그 사람의 어려움이 내가 당하는 어려움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것이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닌데, 마치 내 문제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내가 내 문제를 기도할 때는 응답을 많이 받지 못하는데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 하는 기도들은 기도의 응답이 너무 풍성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내 중보기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굉장히 힘 있는 기도가 됩니다. 그런 기도를 하면서 힘을 얻게 됩니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나서 내 개인적인 필요를 가지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단계를 거쳐서 내 소원을 하나님 앞에 아뢰는 기도를 할 때는 그런 순서 없이, 그런 과정 없이 하나님! 하면서 내 소원을 아뢸 때하고는 너무나 분위기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이 느껴집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할 때도 성령께서 주장하셔서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까지도 다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게 되면 성령님께서 함께하시고, 임재하셨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편안하고, 기쁠 수가 없습니다. 내 기도를 그렇게 들어주시고, 성령께서 함께해 주신 것에 대해서 무엇인가? 찬양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막 듭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하는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을 많이 높이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주신 찬송! 그때 생각하는 찬송이 있으면 그 찬송을 부르면서 기도를 끝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하면서 끝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면 기도를 하는데 얼마 동안이나 기도를 해야 하느냐? 그것은 개인마다 다 시간 차가 있습니다. 성령이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하시다 보면 기도를 더 오래 할 수도 있고, 짧게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기도하면서 알아서 조정이 되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특별히 기도훈련을 할 때는 횟수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원리 가운데는 부분이 전체를 들어내는 부분이 전체를 말하는 그런 원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주일을 이 안식일을 하루를 거룩하게 지키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목적은 사실 그 하루만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엿새도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루를 그렇게 살면 엿새를 그렇게 산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분이 전체를 들어내는 그런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득 가운데 십일조를 들인다. 우리는 십일조만 드리면 다 되는 것인가? 아닙니다. 사실은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받은 것을! 그러나 우리가 십분지 일을 드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 가운데는 번제, 화목제, 속권제, 속죄제 여러 가지 제사가 있습니다. 제사들은 그 필요가 있을 때 드리는 것입니다. 화목제라는 것은 화목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으면 그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어떤 필요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매일처럼 드려야 할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상번제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상번제는 아침에 한 번 드리고, 저녁에 한 번 드립니다. 그런데 왜? 아침에 한 번 드리고, 저녁에 한 번 드리느냐? 아침에 한 번 드리는 것과 저녁에 한 번 드리는 것을 통해서 하루 종일 하나님 앞에 제사한 것으로 관주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번제단의 불이 24시간 꺼지면 안 되고, 향단의 불이 24시간 꺼져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사도 24시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이 상번제라고 하는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화목제사를 드릴 때도 상번제는 드려야하는 것이고, 속권제사를 드릴 때도 상번제는 반드시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한 번 드리고, 저녁에 한 번 드리는 것으로 온종일 드린 것이 되는 것처럼 기도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방울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할 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을 들을 때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아침 한 번 기도하고, 저녁에 한 번 기도하라! 그런 의미로 받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아침에 한 번 기도하고, 저녁에 한 번 기도하면 하루종일 기도한 것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으로 그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훈련을 하실 때도 기도 책자를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줄 터인데, 아침에 한 번 기도 책자를 가지고 기도하시고, 저녁에 기도 책자를 가지고 기도하시고 그런 훈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서 모든 환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도 예배의 환경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확실하게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되느냐? 안 되느냐? 라는 논란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배라고 하는 것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장소보다도, 형식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예배가 예배 되기 위해서는 그 예배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느냐! 그것이 답입니다. 영상으로도 예배를 드리더라도 그곳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도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것은 예배가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는 성령이 함께하는 예배냐? 아니냐? 의 관심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느냐? 그곳에만 너무나 관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공산당 치하에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들었습니다. 그곳에는 목사님도 안 계시고 그냥 평신도들끼리 예배를 드립니다.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하교회에 성령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냥 돌아가면서 성경을 읽어도, 성령이 깨달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그곳이 교회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 19 시대의 우리는 영상예배가 참 예배냐? 아니냐? 논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들었던 이 예배가 정말 성령님이 함께 하셨던 예배였을까? 하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다시 원래의 예배로 회복이 된다고 해서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냐? 하나님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늘 습관적으로 하던 일! 그래서 이것은 성령이 함께하신 예배지! 그럼! 그 부분에 대해서 한 번도 우리는 고민해보거나 우리가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만약에 코로나 19가 좀 더 계속되어 진다고 하면 이제는 각자가 성령과 함께하는 그런 예배자가 되도록 훈련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신앙에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상황이 성령과 함께하는 예배를 훈련하는 것에는 너무나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특별히 말씀훈련과 기도훈련에 여러분들이 열심을 내주셔야 합니다. 그곳으로 여러분들이 준비해서 성령과 함께하는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여러분들이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다가 힘든 일이 있다든지, 길이 막힌다든지 그럴 때도 항상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이 답이다! 하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우리가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님과 늘 함께하는 그런 신앙생활과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성령님께서 답이 되시기 때문에 사실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신당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말씀과 기도의 훈련에 전념하셔서 정말 성령과 함께하는 그런 신앙생활! 성령과 함께하는 그런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을 체험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성령의 임재하심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시고, 성령의 인도하심도 체험할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성령에게 사로잡히는 경험도 있게 하여 주시고,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과 함께하는 그런 신앙생활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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