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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이혼
  • 설교일2020-12-27
  • 성경본문마태복음 19:1-9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코로나19가 시작하면서 코로나19, 코로나19 그저 코로나19를 입 달고 살다 보니깐! 벌써 올해의 마지막 주일을 저희들이 맞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재림도 그리고 세상의 종말도 이렇게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두려운 마음도 생깁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우리가 종말이 가까이 보면 볼수록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깨어서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하고,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만이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빼앗기지 않을 수 있도록 지켜주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유혹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보호해주기도 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읽으면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말씀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잘아나게 되는가? 믿음이 얼마나 굳건해지는가 하는 것들을 생각해보게 해줍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마태복음 18장에서 끝이 나게 되고, 19장부터는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도중에 일어났던 사건들과 예루살렘에 가셔서 사역하셨던 일들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꼭 내려가셔야 했는가? 그리고 예루살렘에 가셔서 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셔야 했는가?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성경이 우리들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내려가셔서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는지를 설명해주는 많은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느 지역인지 특별히 알 수는 없지만, 바리새인들이 예전처럼 예수님에게 나와서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의 내용은 마태복음 19:3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유만 있다면 이혼하는 것이 괜찮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하게 된 동기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했다.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험한다는 의미는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들어 내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주 예민한 정치적인 질문을 해서 예수님이 그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보니깐 아! 이 사람은 여당 성향의 사람이구나! ! 이 사람은 야당 성향의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들어내는 그런 목적으로 질문을 했다. 그런 의미로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바리새인의 질문을 통해서 우리가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예수님 당시에도 이혼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고, 일상적으로 흔하게 있는 일이었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고, 사람이 어떤 이혼할 이유만 있다면 이혼을 한 것 같은데, 그 이혼의 이유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그것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저마다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그 문제 때문에 사회적인 갈등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그 질문을 통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질문의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고, 단호하셨습니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안 된다는 이유를 마태복음 19:6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짝을 지어주시는 것이 결혼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미로 그것을 이혼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나눠서는 안 된다. 말씀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되묻습니다. 그런데 왜?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고, 버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까? 마태복음 19:7입니다.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여기서 모세가 한 저 말은 모세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개인적인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셔서 모세가 한 말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이 재질문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이때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고, 저 때는 이런 경우에는 이혼해도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지금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사실 굉장히 난감한 입장입니다. 그러면 왜? 모세는 이혼을 해도 좋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을까? 우선 우리가 신명기 24: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수치 되는 일을 발견했지만,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그냥 넘어가면 이혼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치 된 일을 발견하고서 그것을 못 견뎌서 참을 수 없다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뜻 생각이 드는 것은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줘서 이혼하기 전에는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때는 이혼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세가 저 말씀을 한 이유부터 사람들이 이혼하게 된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서 이혼을 해라! 그렇게 말하기 전에는 사람들은 더 쉽게 이혼한 것입니다. 너무나 간단합니다. 나는 너랑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나는 이제부터 이 여자와 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장 나가라! 그것으로 이혼이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가라고 말한 즉시 그 여자는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한 채 그냥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헌에 보면 그때 사람들은 여자들이 장신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장신구를 많이 하는 것은 예쁘게 보이려는 목적도 있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혼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경우 즉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몸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만 가지고 나갈 수가 있어서, 마치 보험 차원으로 그렇게 장신구들을 일부러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혼당한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즘처럼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사회였다면 별문제가 없는데, 그 당시에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살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재혼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그 여인들이 살기 위해서 재혼을 합니다. 물론 남의 소실로 들어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통해서 재혼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내를 버린 남자가 마음이 바뀌어서 내가 저 아내를 버린 적이 없다. 이렇게 말을 하면, 간음을 버린 여자가 됩니다. 그러면 그 여인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래서 재혼 하는 입장에서도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전 남편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릅니다. 그것이 두려워서 그냥 사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어렵지만 재혼을 하지 못하고 혼자서 사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말할 때는 항상 고아, 과부를 이야기합니다. 그 성경에서 말하는 과부는 남편과 사별한 여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방적으로 이혼당하고, 재혼하지 못하고 사는 그런 여자들을 다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모세의 이혼 증서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 이혼 증서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남편 A는 아내 B를 내보냅니까? 이혼합니까? 소박을 시킵니까?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이 여자를 취해도 좋습니다.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장소, 날짜를 기록하고, 남편이 서명하고, 두 명의 증인이 서명합니다. 그러면 이혼 증서를 받은 여자는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하더라도 간음에 어떤 누명을 쓸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의 입장에서는 일단 이혼 증서에 서명하면, ! 그래도 버리기에 너무나 아까운 여자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그 여자를 데리고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혼 증서에 싸인을 하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혼 증서는 이혼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루게 만들고, 무겁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에 일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의 경우에도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는 경우가 있었느냐? 거의 없습니다. 남자가 문등병에 걸렸을 경우에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남편이 바람이 피웠다는 이유! 다른 이유로서는 여자는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혼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남자들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바리새인들의 이 질문이 왜? 예수님에게 시험꺼리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혼할 수 있느냐?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달랐다고 했습니다. 보수적인 율법학자들은 그 이혼의 사유가 간음을 행했을 뿐이다. 하고 굉장히 좁게 해석했습니다. 간음을 한 연고 외에는 이혼해서는 안 된다.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좁게 생각을 했는데, 진보적인 율법학자들은 그것을 굉장히 폭넓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간음을 행한 것뿐만 아니라 여자가 일을 못 한다든지, 목소리가 너무 커서 여자답지 못하다든지 그것이 다 남편에게 거슬린다든지, 잠잘 때 코를 곤다든지 이런 등등의 여러 가지 범주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간음한 연고 외에는 절대 이혼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깐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율법학자의 편을 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지지를 받을 수 있는데 진보적 율법학자들에게는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들에게는 엄청난 반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세례요한의 죽음이 헤롯 안티파스의 이혼과 재혼에 대해서 세례요한이 거론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도 잘못하면 그것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예수님에게 시험꺼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 사람들에게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서 아내를 버리라고 허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날처럼 성인 남녀가 서로 만나서 교제를 하고, 연애를 하고, 사랑을 느껴서 결혼한 것이 아니고, 그냥 두 가문이, 두 집에서 부모님이 혼인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딸이 있고, 아들이 있는데 혼사를 맺자!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이미 혼인을 약속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결혼할 나이가 어느 정도 되면 그냥 결혼시켰습니다. 결혼한 당사자들은 한 번도 아내 될 사람의 얼굴도 본 적도 없고, 남편 될 사람의 얼굴을 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서 살려고 하다 보니깐 잘 맞으면 좋은데, 자기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형상이 아니라 외모적인 면에서도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이라든지, 성격적으로도 나하고 너무 안 맞는다든지 이렇게 될 경우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갈등이 일어나도 여자는 참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여자는 자기가 싫어도, 자기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자기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그냥 참고 삽니다. 여자는! 그런데 남자는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싫어지면, 싫어지는 마음이 점점 깊어지면, 그 여자에 대해서 더 학대하듯이, 말도 심하게 하게 되고, 화가 나면 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이렇게 되다 보니 여성의 입장에서는 너무 결혼 생활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거기에 두고 남자 술을 먹고 취한 상태에서는 그 여인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행위도 있었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여성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되면 안 된다. 그래서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혼당한 여자들이 재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이혼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이혼이 보편적인 현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마태복음 19:8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본래 하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인간들이 너무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냥 어쩔 수 없이 그냥 허락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의 마음은 어떤 것인가? 창세기 2:18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 좋지 않다는 것은 덜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돕는 배필을 줌으로 인해서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각자가 살면서 가질 수 있는 행복보다는 둘이 결혼하게 살게 되면 그 행복이 훨씬 더 증대 될 수가 있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결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이 더 행복해지도록 해주고 싶으셔서 그래서 하나님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래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창세기 1:27~28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두 가지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는 결혼을 통해서 두 사람이 더 행복해지기를 바랬던 마음과 두 사람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서 그 자녀로 하여금 세상에 충만케 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 가지고 계셨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라기 2:15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가지셨던 마음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너희들에게 하나님께서 결혼이라는 선물을 주신 것은 너희를 통해서 하나님은 경건한 자손을 얻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로 충만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특별히 경건한 자손들이 이 땅에 충만한 지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크리스쳔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깊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현상은 예수님 때나, 모세의 시대 때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통계적으로 보면 3쌍 중 1쌍이 이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0% 정도가 이혼하는 것입니다. 현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많은 젊은이 생각 속에 이혼이라고 하는 것을 굉장히 개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통계로 나와있습니다. 상황이 되면, 상황이 이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이혼하는 것도 괜찮은가? 그렇게 물었을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은 41.4%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은 35.9%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5.5%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예수님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혼이라고 하는 것을 아주 쿨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하나님의 결혼의 대한 의도나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주셨다고 하는 그것만 생각합니다. 그것만! 그것도 둘이 합해서 혼자 살 때보다 둘이 합해서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만 더 행복해지려고, 상대방을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그러다 보니 이런 문제가, 갈등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혼이 아주 보편적인 일처럼 되어버린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은 이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예를 들어보면 그곳은 이미 아주 일상적인 것이 되어서 하나도 이혼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미국의 목사님들 중에는 주례를 할 때 축복기도를 해줍니다. 축복 기도하는 기도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혹시 이 둘이 이혼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하나님! 이 이혼 가운데도 축복해 주십시오! 그런 기도를 합니다. 놀랍죠! 여러분들은 하나도 놀랍지 않는데, 목사님께서 그런 축복기도를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호주에서는 주례를 하시기 전에 신랑, 신부에게 위탁금을 받습니다. 600불 그것을 주례하는 목사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600불을 왜? 맡기라고 하느냐? 내가 주례한 후에 1년 이내에 이혼하지 않으면, 내가 이것을 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년 이내에 이혼하게 되면 못 찾아간다. 얼마나 이혼이 많으면, 그저 주례자의 소망은 1년은 어떻게든지 견뎌봐라! 1년 후에 이혼하는 것은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1년 안에는 이혼하지 말아라! 그런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바람이 나서 이혼하는 경우, 내 아내보다 다른 여자가 더 멋있어 보이고, 저 여자랑 살면 더 행복 질 것 같아서 내가 살고 있는 아내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 하는 것은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간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혼은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경우가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사실 행복 하려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운 경우도 많습니다. 남편의 주벽 때문에 술만 먹으면 아내를 때린다든지, 게임 중독이나, 알콜 중독이나, 놀음 중독에 빠져서 전혀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든지 그런 경우에는 아내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모세도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해라! 그런 정신이 그곳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또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말씀하실 때도 안식일은 본래 인간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인간을 복되게 하여주신 것이 안식일인데, 그 안식일이 인간에게 복이 되지 않을 경우에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이 똑같은 원리가 결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혼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과 신부를 위해서 결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하게 된 저마다의 동기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내 입장에서 이혼한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난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 이혼했겠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하는 것을 우리가 받아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혼이라고 하는 것은 차선이지! 최선의 경우는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최선의 경우를 선택할 수 있느냐? 그것은 결혼하기 전에 먼저 결혼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준비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내가 왜? 결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자신에게도 묻고, 하나님께도 물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결혼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혼자 사는 것보다는 더 행복해질 수 있어서 더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자녀를 낳아서 경건한 자녀를 낳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런 목적이라면 결혼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하나님이 너희들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준 것인데 너희들이 타락한 이후에 너희들의 그 죄 성이 본성이 죄로 물들어 있어서, 하나님이 행복으로 준 것을 너희들이 다 불행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죄 성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완악하고 그러므로 결혼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혼 생활을 해야 하는 신랑, 신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결혼이라는 행복을 만들어 내고, 지켜내는 일이 어떻게 쉽겠습니까! 많은 기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많은 기도와 노력 가운데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생활에서도, 결혼 생활에서도 동일 한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지어야 할 십자가를 지고, 아내는 아내로서 지어야 할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그 십자가를 피하지 말고, 그 십자가를 지게 되면 그것이 남편을 구하기도 하고, 아내를 구하기도 하고 그것이 자녀들을 지킬 수 있게 하고, 가정을 지킬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무도 자기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 앞에 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혼해야만 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는 매일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야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결혼 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사람들은 가정을 만들어서 가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더 열심히 하나님께 내 일처럼 끊임없이 은총을 구하고, 긍휼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가정의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고, 가정의 행복을 지켜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은총을 구하고, 긍휼하심을 구하는 그렇게 기도하는 성도님들의 가정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함께하실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결혼 적령기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성도들의 가정들마다 행복한 가정들이 되게 해주시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서로가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기도할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가정 모두가 자기가 지어야 할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이 어두운 세상 속에 함께 가정을 지켜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귀한 은총이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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