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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 설교일2020-11-29
  • 성경본문마태복음 17:14-20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이런저런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어떤 것은 종교라고 말하고, 어떤 것은 민간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종교와 민간 신앙을 구분할 수 있는 일반적인 기준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종교 안에 영적인 신비가 있느냐?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종교가 가르치는 윤리가 있느냐? 다른 말로 말하면 세상에 대한 책임 의식!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이 있느냐? 하는 것으로 구분을 합니다. 유교 같은 경우에는 윤리의 가르침은 있지만, 어떤 영적인 신비가 없기 때문에 유교를 종교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샤머니즘 같은 것은 나름대로 어떤 영적인 신비는 있지만 그러나 윤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샤머니즘은 종교로 인정받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 종교가 부흥하는 시기가 있고, 쇠퇴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다 부흥할 때는 부흥할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쇠퇴할 때는 쇠퇴할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종교들이 쇠퇴할 때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신비감을 잃어버릴 경우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에 종교가 쇠퇴하게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최악의 경우는 영적인 신비감도 잃어버렸고, 사회적인 책임도 다하지 않으면서 오직 자기들만의 모임! 자기들만의 예배! 자기들만의 친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기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기독교 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든 다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변화산 위에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이곳에다가 예수님을 위해서, 모세를 위해서, 엘리야를 위해서 초막 셋을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말하는 그 순간에도 변화산 아래에서는 귀신 들린 아들 때문에 정말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어떤 한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그런 내용인데 이 본문이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우리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곳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냐? 그리고 교회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변화산의 체험! 영적인 신비를 체험하는 일은 기독교에서 꼭 필요한 것이고, 교회에도 꼭 필요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이런 영적인 신비를 많이 경험하고, 자주 경험할수록 좋은 일입니다. 그러지만 그 일 때문에 항상 변화산 위에서만 있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변화산에서는 내려와야 합니다. 내려와야 할 이유는 교회가 사회에 대해서 이 세상을 위해서 감당해야 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마태복음 17:14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이 한 사람이 귀신 들린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던 한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와서 꿇어 엎드려서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 아버지는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도 사실 궁금한 일입니다. 왜냐면 가이사랴 빌립보는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그러니 남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이사랴 빌립보에 올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는 가이사랴 빌립보로 간다.” 이렇게 소문을 내고 가이사랴 빌립보에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러데도 그 아버지는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 아마도 이번 기회에 내가 예수님을 만나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야 되겠다. 하는 그 간절함이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아낸 것이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 찾아올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은 한 번도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는 사람을 거절해보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8:12~13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하나님이 저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너무나 먼 곳에 계시고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어딘가에 숨어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늘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마치 하나님의 탓으로 그리고 우리 스스로 변명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너희가 정말 간절하게 나에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내가 듣겠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정말 열심히 하는 마음으로 나를 만나고 싶어서 나를 찾고 또 찾으면 내가 너희를 만나 줄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늘 기억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쨌든 이 아버지가 가이사랴 빌립보에 왔을 때는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3명의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 위에 올라가셔서 그곳에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이사랴 빌립보 변화산 아래에는 나머지 9명의 제자들만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아버지는 예수님을 만나러 왔지만,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 9명의 제자들에게 내가 왜? 예수님을 찾아왔는지, 내가 예수님에게 어떤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태복음 17:15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내용입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이 말씀만 보면 이 아버지의 아들이 간질병으로 고생을 했는가 보구나! 그래서 이간질 병을 고치려고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구나!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다른 복음서에 보면 똑같은 내용을 다르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20 보시겠습니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경련을 일으키고, 땅에 구르면서 거품을 흘리는 것! 간질 환자에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 아들 속에 있는 귀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간질이라는 질병 때문에 발작을 일으켜서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 9:2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목적이 분명합니다. 죽이려고 하는 목적으로 물에도 넣었고, 불에도 던져 넣었다. 물론 귀신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이렇게 물리적인 힘을 가해서 사람을 불에 던지거나, 물에 넘어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귀신이 그 안에서 그 아들에게 계속 속삭일 수는 있습니다. 불에 몸을 던져라! 물에 몸을 던져라! 괜찮아! 계속 그렇게 속삭이게 되면 어느 순간에 그 이야기를 듣고 충동적으로 자기 몸을 불에 던지거나, 물에 던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에만, 물에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귀신이 계속해서 그렇게 속삭이게 되면 충동적으로 그런 일들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굉장히 귀신 들린 사람이라는 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할 것은 귀신이 모든 병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귀신이 병을 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처럼 이것이 간질병처럼 간질병은 아니지만 현상이 너무 간질병과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신이 간질병을 주었을 경우에는 귀신을 쫓아내야만 병이 치료가 됩니다. 병의 원인이 귀신이니깐! 그러나 뇌에 문제가 생겨서 간질 앓고 있는 환자는 귀신을 쫓아내려고 한다든지, 그 사람을 때리면서 귀신아! 나가라!” 그렇게 하면 사실 더 상태가 나빠질 경우가 있습니다. 귀신이 들려서 그런 사람을 약물치료를 한다든지, 계속해서 어떤 의학적인 치료를 하면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고, 오히려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구별한다는 것이, 분별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가운데 상존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유념해 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경험한 사실을 일반화 시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의 경우는 너무 오랫동안 아들이 간질병 증상을 보이면서 힘들게 살아 왔는데 예수님에게 데리고 갔더니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냈고, 그 순간 멀쩡해지고, 깨끗해졌습니다. 그러면 이분은 자기가 경험한 이 사실을 일반화시키려고 하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보니깐 자기 아들과 비슷한 것입니다. 증상이!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 이 아이도 뭐가 들어가서 귀신이 들어가서 그러니 너도 귀신을 쫓아내야만 내 아들처럼 낳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은 정말 뇌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간질질환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경험 사실은 자기에게 굉장히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을 일반화해서 모든 사람들의 경우도 나 같은 경우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상태가 이랬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었을 때 그 9명의 제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그 아들에게 들려있는 귀신을 쫓아내려고 나름대로 시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실패했습니다. 이것이 이제 몰고 온 파장이 생각보다 큰 파장이 몰고 오게 되었는데 마가복음 9:14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그러니 지금 9명의 제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금 이 아들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구경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 구경꾼들이 얼마나 호기심을 가지고 보았겠습니까! 정말 저렇게 해서 무엇이 나가는가? 정말 귀신이 들린 것일까?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리들 중에 똑똑한 사람입니다. 서기관이 그 문제로 가지고 시비를 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너희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종의 쇼하는 것이 아니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러니 제자들은 제자들 입장에서 여러 가지 변명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변론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항상 사람들과 서기관과 제자들 사이에 변론이 일어나고 있었다. 9명의 제자들은 굉장히 곤혹스러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런 것이니깐! 얼마나 우리 말로 창피하겠습니까!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그 자리가! 그런데 마침 예수님이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9명의 제자 중에 단 몇 명이라도 우리가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한 제자들이 1, 2명이라도 있었으면 그러면 그들은 시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 위에 올라가 계시니깐! 곧 내려오실 것이다. 그 아버지에게도 조금만 기다리자! 예수님이 곧 내려오시면 예수님이 도와주실 것이고, 너의 아들의 병을 치료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9명 중에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면,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그렇게 했는데 실패를 한 것입니다. 도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 마태복음 10: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그런 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전도하러 나가서 많은 귀신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자기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예전에 했는데 지금이라도 못 하겠습니까! 자신감이 충만해서 그렇게 했는데 실패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전에는 그렇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제자들이 왜? 이번에는 쫓아내지 못한 것이냐? 우리만 궁금한 것이 아니고, 9명의 제자들은 더 궁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하고 홀로 있을 때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마태복음 17:19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 말은 예수님! 예전에는 귀신을 많이 쫓아냈는데 주님도 아십니다. 우리가 전도 여행을 나가서 많은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을 주님 앞에 와서 보고를 드린 적도 있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왜? 실패한 것입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절대로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많은 사람들이 9명의 제자들처럼 실패를 하지만, 인생을 살다가 내가 왜? 실패했을까? 이렇게 묻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9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우리는 왜? 못했습니까? ?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도대체 예수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입니다. 왜냐면 질문이 있어야 답이 있는 것입니다. 질문을 해야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9명의 제자들도 이런 실패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질문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없었을 것입니다.

꼭 실패를 했을 경우에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종종 질문을 많이 던지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질문하지 않고 성경을 읽으면 성경에 대한 지식은 많이 쌓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대한 깨달음! “! 이 말씀이 이런 말씀이구나!” 하는 깨닫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질문이 없으면 답이 없기 때문에 깨달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성경의 내용! 그 지식만 많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을 하셨는가? 그것도 궁금합니다. 마태복음 17:20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 속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 겨자씨가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작은 것인지 알겠죠!

그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들어서 저쪽으로 옮겨라! 해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데 귀신 하나를 쫓아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지금 제자들의 그 믿음은 겨자씨보다도 더 작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겨자씨보다도 더 작은 믿음이 있다? 없다?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 속에는 제일 작은 것이 겨자씨입니다. 그러니 지금 예수님이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다. 너희 믿음이 적은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사실상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예전에 귀신을 쫓아낼 때는 믿음이 있어서, 그 믿음으로 귀신을 쫓아냈는데 오늘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너희들이 믿음이 없어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믿음이 무엇이냐?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고, 없다가도 새로 생길 수 있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한 번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영원할 것 같습니다. 계속 믿음이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 친척 본토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그때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고, 순종했다. 믿음으로 떠난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순종을 한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자손을 아주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하늘의 별처럼 이렇게 많아지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아무리 봐도 아직 뭐? 아들 하나를 얻지를 못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염려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런 아브라함의 마음을 읽으시고, 한밤중에 장막에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냅니다. 장막 밖으로! 불러내서 하늘을 보라! 정말 이스라엘의 산지를 가보면 우리가 경험해보지만, 정말 이스라엘의 하늘은 정말 맑아요! 2,000년 전에는 더했을 것입니다. 하늘을 보라! 별이 정말 얼마나 많은지! 아브라함보고 저 별을 셀 수가 있느냐! 어떻게 저 별을 셀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내 후손을 저렇게 많도록 너에게 줄 것이다. 그때도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창세기 16장에 오면 사라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느냐?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들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당신은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깐 더 늦기 전에 젊은 여자와 관계를 통해서 아이를 낳아라! 어쨌든 내 몸에서 낳지 않는 아이라도 당신이 아이를 낳으면 당신의 아이가 아니냐! 그렇게 해서 자손을 늘릴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자기가 데리고 있던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줍니다. 그때 하갈가 동침해서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 순간에는 하나님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하나님의 말이 아닌 사라의 말을 듣고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많이 상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이후로 하나님께서 한 동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다. 창세기 17:1 오게 되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은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에 대한 그 믿음! 내가 너에게 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굉장히 진지하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만 이렇게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봅시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주님 저도 바다 위를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저에게 오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라!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베드로가 내려서 바다 위를 걸어갑니다. 무엇으로 걷는 것입니까?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오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의 믿음으로 걷습니다. 그러다가 파도 일어나는 것을 보고, 물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가지고 있던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4:31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지금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9명의 제자들에게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믿음이 적은 연고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베드로에게도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표현은 믿음이 적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었을 때는 그것이 가능했는데 믿음을 잃어버렸을 때는 물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것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잘 지키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겟사마넷 동산에서 기도할 때도 제자들이 기도하지 못하고 조니깐 답답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세요? 한시라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게 그 말은 너희들에게 있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어떻게 하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있던 믿음도 잃어버릴 수 있고, 빼앗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우리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입니까? 주님!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 너희에게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똑같은 문제를 놓고 마가복음 9:29 에는 다르게 말씀을 하세요!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에서는 믿음이 없는 것을 이유로 말씀하셨는데, 마가복음에서는 기도가 없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저기서 말씀하신 것이 다른 것으로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 믿음과 기도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입니다. 하나로 봐야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7절에 우리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어서 믿음이 생겼는데 그 생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지키는 일은 기도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기도 없이 성경만 계속 읽게 되면 성경에 대한 지식은 늘어날지 몰라도 믿음은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과 믿음이 있는 것과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헤롯왕이 제사장과 서기관을 다 소집해서 묻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그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베들레헴 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인용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일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지만 그렇게 이야기한 제사장과 서기관들 중에서 한 사람도 동방박사를 따라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 믿음이 없으니깐!

그래서 우리에게 생긴 그 믿음을 우리가 잘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내용은 제자들이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입니까?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에 대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고, 기도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예수님의 답은 정말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만 그런 해당할 수 있는, 적용할 수 있는 답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너희들이 믿음이 있었다면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믿음이라면 무엇을 못 쫓아내겠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풀지 못한 문제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이냐면 제자들처럼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못 하는 것입니까? 왜 나는 못 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너무 쉽게 믿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하지 않는 이유가 가장 큰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 속에 기도가 없는 것입니다.

코로나 19의 상황이 있으면서 다 힘들어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어려움이 계속되는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정말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코로나 19의 상황이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 때문에 예전에는 그렇게 열심히 기도 하지 않았지만, 이 어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어쩔 수 없게 기도할 수 있게 만든다면 그것도 여러분! 오히려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전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게 된다면 믿음을 잃었던 사람들은 믿음을 다시 찾을 수가 있고, 현재 있는 믿음은 더 큰 믿음으로, 더 강한 믿음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바라기는 정말 우리 교회가 믿음도 있고, 기도도 있는 교회! 우리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믿음 있는 성도! 기도가 있는 성도! 그런 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게 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도 물을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코로나 19와 같은 어려운 때에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를 통해 영적인 신비함을 많이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은혜도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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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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