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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변화산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 설교일2020-11-22
  • 성경본문마태복음 17:1-8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동안 홀로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말씀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고난을 당하고, 그들 손에 죽음에 당하고, 3일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지금이라도 제자들에게 자기 속마음 이야기했었던 것이 굉장히 기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그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홀가분했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이 좋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생깁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에 반대하면서 아주 거칠게 항의를 한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아니고, 방금 전에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정색을 하고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그리고 보라는 듯이 모든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었던 빌립보 가이사르라는 지역은 나름대로 예수님에게나 제자들에게 굉장히 뜻깊은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정말 의미 있는 시간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때문에 그 좋은 분위기를 망친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그 이후에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갔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한 질책을 들은 제자들이 주눅이 들어서 그 이후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만 하고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면 우리들은 예수님에게 많은 것을 질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베드로가 무엇을 크게 잘못해서, 책망을 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예수님 왜? 굳이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죽음을 당해야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죽은 지 3일에 살아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만약 제자들이 정말 그런 질문을 예수님에게 했다면 예수님은 예수님 나름대로 그 질문에 잘 설명하려고 애를 쓰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십자가라고 하는 것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해서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한들 제자들 그것을 이해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십자가의 관한 이런 이야기들은 설명하는 예수님 입장에서도 설명을 듣는 제자들의 입장에서도 무엇인가 조금은 부족한 그런 답답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린 결론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기로 결심을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7: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이 높은 산은 어디에 있는 산일까? 그리고 그 산의 이름은 무엇일까?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학자들도 다 의견이 다릅니다. 그런데 가이사르 빌립보 지역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높은 산은 헐몬산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예수님께서 이 헐몬산에 올라가신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산에 올라가셨는데 굳이 엿새 후에 그 산에 올라가셨다. 날짜를 말씀하시는 것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엿새 후에 산에 올라가셨다는 그 엿새 후라는 말씀이 없으면 문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나?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엿새 후에라는 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었고, 예수님의 책망이 있었고 그 이후에 6일 동안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많은 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화의 핵심은 십자가에 관련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뭔가 2% 부족한 그런 아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는 그 말씀을 하고 싶어서 엿새 후에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 높은 산에 올라가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다시 마태복음 17: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본문에서는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이런 말씀만 있었는데 그 높은 산에 왜? 올라가셨을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마태복음에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방금 우리가 본 것처럼 누가복음 9:28~29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기도하러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6일 동안 제자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일까? 십자가에 대해서 6일 동안 제자들과 충분하게 이야기를 한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많은 이야기 한들 무슨 소용이 있고, 이해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 하셨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기가 십자가를 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는 기도의 필요성을 알았습니다.

본인만이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성을 주님이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게 될 때 제자들이 그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실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될 텐데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제자들을 위해서도 내가 기도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도 하셨을 것이고, 6일 동안 제자들과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그 부분을 변화 산에 올라가서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보여주면서, 뭔가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부족했던 부분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이렇게 예수님께서 배려해주신 그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기도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나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하루 일과를 소개를 해준 부분들이 있습니다. 오전에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점심에는 베드로의 집에 가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 것을 치료해주시고, 해질 무렵 저녁때가 되었을 때는 그 동네에 있는 모든 귀신 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다 치료해주십니다. 예수님의 하루의 일과가 생각보다 굉장히 빡빡하고, 굉장히 피곤한 일정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다음 날 아침 동트기 전에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다.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생각해보면 하루를 너무나 피곤한 일정을 보내셨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은 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쉼보다도 기도의 대한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도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일들을 합니다. 봉사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그런 일들을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힘으로, 자기 경험으로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아이! 힘들다!” 그래서 쉼에 대한 절박함은 절박하게 느끼지만,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성령의 힘으로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기도에 대한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데 그런 일들을 하면서 정말 내가 기도에 대한 필요성을 내가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전혀 기도에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그냥 피곤하고, 힘들다. 그냥 쉬고 싶다. 쉼에 대한 필요성만 느낀다면 그것은 내 힘으로 일을 한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주님을 의지해서 주님 주신 힘으로 일을 하게 되면 기도에 대한 필요성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신당중앙교회 성도님들은 신앙생활을 해가는 가운데 정말 종종 기도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기도를 할 때 두 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17: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굉장히 영광스러운 형체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저 표현은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가 인간의 몸입고 계시는 동안에는 그 안에 하나님의 본래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인간의 몸! 육체를 입고 계시는 예수님만 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그러느냐? 그렇게 물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 엘리야 또는 선지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기도할 때 그 육체 속에 몸속에 감추어져 계셨던 그 하나님의 원래의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의 본래의 모습이 들어나게 됩니다. 그것을 보게 된 제자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예수님의 오리지널 한 모습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분이었구나! 그 한 가지 사실을 통해서도 그 6일 동안 자기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에 대한 답을 그들이 거기서 얼마든지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참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나타났는데 오늘 마태복음 17:3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모세라는 사람과 엘리야라는 사람이 변화 산에 나타났습니다. 나타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예수님과 무엇인가?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뭔가 어떤 내용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엄청 궁금합니다.

아니 엘리야, 모세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너무나 신기한데 그들이 나타나서 예수님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일까? 누가복음 9:30~3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그 일을 놓고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그 일을 위해서 대화가 필요하면 필요할 수 있는데 그 대화의 대상자가 왜? 하필이면 모세이고, 엘리야일까?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안 되는 것일까? 그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지금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십자가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예수님! 십자가를 지셔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셔야만 율법이 비로소 완성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율법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예수님!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십자가가 정말 수치스럽고, 두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셔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지금까지 선지자들이 예언해왔던 모든 예언이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그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라도 예수님!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십자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놀랍게도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보내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신 모세를 배척합니다. 거절합니다. 그것은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알 숭배로 물들어 있는 그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나님이 엘리야를 선지자로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모든 선지자를 핍박하고, 나중에는 엘리야마저 핍박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도망을 칩니다. 호렙산 어느 동굴에 숨어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것이냐?” 엘리야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세벨이 모든 선지자를 다 죽이고, 이제 나만 남았는데 나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아무도 엘리야 편에서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없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편에서 엘리야 선지자를 보호해주고, 함께 바알 신앙자들과 싸우고 이런 백성들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엘리야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실은 배척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배척을 받았습니다. 고향 사람들에게도 배척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그리고 서기관들에게 내가 수난을 당하고, 그들 손에 의해서 내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될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그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6일 동안에 아쉬웠던 부분들이 다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다 그 자리에서 해결이 된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들이 궁금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예수님 때를 기준으로 하면 모세는 1,500년 전 사람입니다. 엘리야 800년 전 사람인데 1,500년에 죽은 사람과 800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엘리야가 어떻게 변화산에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냐? 죽은 사람이 그것이 첫째 의아한 생각입니다. 둘째는 아니 어떻게 1,500년 전 사람이고, 800년 전 사람인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어떤 사람도 저분이 모세다. 저분이 엘리야다. 설명해 주도 안았는데 어떻게 모세인지 알았고, 엘리야인지 알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세계의 신비로움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죽으면 다 끝이지! 죽으면 다 없어지는 거야!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입니다. 죽음 이후가 두렵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사람이 죽어서 사라져버렸다면 어떻게 변화산에 모세가 나타날 수 있고, 엘리야가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어딘가에 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제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몸을 입고 있을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어디든지 갈 수도 있고, 이런 일을 할 수도 있고, 저런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육체의 몸을 벗는 순간 우리의 영혼이 육체를 벗는 순간부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한이 많아서 구천을 떠도는 혼백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 합니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은 있을지 몰라도 구천을 떠도는 영혼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으면 육체를 벗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제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것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자기가 떠돌고 싶다고 해서 떠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와 엘리야도 하나님의 통제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화산에 부르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또한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을 때는 무엇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배워서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알지만, 우리가 이 육체의 몸을 벗게 되면 영혼의 세계에서는 직관으로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누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지옥에 가야 하는구나! 그것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육체의 몸을 벗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우리가 아브라함을 본 적이 있어요? 다윗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도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분이 아브라함이고, 저분이 다윗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다 알게 됩니다. 저분이라는 것을 그것이 영적인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요만큼 제자들을 위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 산의 체험이라고 하는 것! 이런 신비한 영적인 체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 속에 반드시 신비한 영적인 체험! 변화 산의 체험을 가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면 이런 변화산의 체험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신앙적인 유익함이 많습니다.

첫째는 뜨뜬미지근한 믿음! 왔다 갔다 하는 믿음! 그런 믿음이 확실해집니다. 체험을 통해서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신비체험을 통해서 또 그런 체험을 하신 사람들은 어려운 시련이나, 고난을 겪을 때 그것을 잘 감당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영적인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주변에 우리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지! 신비한 영적인 체험을 하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어떤 목사님들을 만나면 꼭 물어보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목사님이 되셨는가?

궁금합니다. 왜냐면 이 길이 보통 길은 아닙니다. 또 하나는 되는 과정 속에서 혹시 신비체험 변화 산의 체험이 있는가? 그것을 꼭 물어봅니다. 목사님들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두 사람만 소개한다면, 한양교회의 최루톤 목사님께서 수요일에 간증을 한번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아버지가 그 아들을 낳아서 정치가가 되라! 그런 꿈을 심어주시면서 미국에 존경받는 대통령! 루스벨트 대통령의 루! 워싱톤 대통령의 톤! 그 두 이름을 따서 최루톤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어렸을 때부터 정치가가 되어야한다는 세뇌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외교학과를 가서 외교부에서 근무를 하다가 정말 더 큰 정치인이 되겠다고 미국에 유학을 간 것입니다. 정치학 박사의 교육이 끝나가는 무렵에 사모님이 계시를 받으신 것입니다. 당신은 신학을 해야 합니다. 목사님은 펄쩍 뛴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무슨! 그런데 워낙 사모님이 신실한 것을 아니깐 한편으로는 깨름직한 것입니다. 왜냐면 자기 주변에서 하나님께서 신학을 하라! 주의 종이 되라고 이야기했는데 맨날 도망 다니다가 나중에 엄청 얻어맞고 돌아온 사람을 너무나 많이 본 것입니다.

나중에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2년반 동안 매일 새벽에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신학을 해야겠다는 심증은 생기는데 확실한 물증이 없으니깐 선 듯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날을 잡고, 12시에 미국의 교회인데 열쇠를 달라고 해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 서서 하나님 앞에 내가 신학을 정말 해야 합니까?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불이 자기에게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불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니깐 얼마나 뜨거운지 견딜 수가 없어서 바닥을 뒹굴 정도로 거웠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정말 뜨거우니깐 기도를 했는데 기도를 끝내고 보니깐 3시간 30분을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그런 이야기 합니다. 자기는 그런 체험이 있기 때문에 목회를 하면서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이것을 그만두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체험이 주는 힘입니다.

또 노원구에 가면 장석교회라고 아주 큰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원로 목사님이 이용남 목사님입니다. 대 선배가 되시는데 그분은 아버지도 목사님입니다. 굉장히 신앙이 보수적이고, 굉장히 지적입니다. 말씀 중심의 목회를 해오신 분입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시니깐 아들이 목사가 되는 것은 크게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그것을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목사님도 목회하는 과정 속에 신비체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자기도 목회 초기에 기도원을 많이 다녔는데 그런 체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자기 체험 이야기를 잘 안해주는데 은퇴를 하셨기 때문에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습니다.

자기가 산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갑자기 강렬한 빛이 비추는데 자기를 감싸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처럼 하늘이 말리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 이대로 그냥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이지만, 이 영적인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적인 체험! 변화 산의 체험을 하게 되면 누구나 다 느끼는 것입니다. 점점 그 순간이 황홀하고, 행복합니다. 이것은 본문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마태복음 17:4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우리말로 이야기하면 집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집을 짓겠다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냥 여기서 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산에 내려가지 않고 왜? 너무 행복하니깐!

너무 황홀하니깐! 그래서 한번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은 그것을 못 있어!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황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그런 체험을 또 하고 싶어서 많이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런 체험을 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서는 굉장히 유익한 것이지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신비체험은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신앙이 신비주의로 흘러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비주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말씀을 따라서 말씀 중심의 신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체험한 신비한 체험! 그 체험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이 신비주의 신앙입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잘못됩니다. 그래서 변화산에서 이 신비한 체험을 한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이 두 가지를 당부합니다. 오늘 마태복음 17:5입니다. 제일 마지막 절에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누구의 말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 결국 신비체험을 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신비체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더 말씀을 붙들어야 하고, 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마태복음 17:8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그래! 신비체험을 하면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 보여야 하고,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 신비체험을 하고 잘못된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누구 이야기 하냐면 내가 환상 중에 모세를 봤어!” 모세의 이야기를 자랑합니다. “엘리야를 봤어!” 엘리야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세와 엘리야를 보여주신 것은 상대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라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들은 흔들리지 말고 이 예수만 바라보고, 이 예수만 따라가고, 이 예수만 의지하라! 그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신비체험의 결론은 그렇게 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런 변화 산의 체험을 할 수가 있는가? 간단합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시다가 변화가 되셨고, 제자들도 기도하는 예수님 곁에 있다가 변화 산의 체험을 한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하시려고 하려면 기도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신비체험을 하고 싶어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런 체험을 주실 수도 있고, 안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거기까지 너무 신경을 써서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믿고 우리는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자세로 기도를 해야 하느냐? 우리 교회의 근처에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서울에서 유명한 식당이 하나가 있습니다. 점심에 가보면 사람들이 줄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기 위해서 줄 서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30분 기다리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고, 대부분 1시간 넘게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식사를 한끼 하기 위해서 얼마 동안을 기다린다고요? 1시간 넘게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공짜로 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 돈을 다 내고 먹는 것입니다. 자 그런 경우에는 저는 어떻게 하느냐? 이렇게 먹으나! 저렇게 먹으나! 한끼 먹는 것인데 1시간씩 기다려서 먹냐! 다른 곳에 가서 먹자! 대부분 그럽니다. 그런데 거기에 서 있는 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 1시간을 기다려서라도 꼭 먹고야 말겠다! 그런 사람은 먹습니다. 그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비체험을 하고 싶다. 다 마음은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체험을 하기 위해서 내가 1년이든, 2년이든 내가 기도하겠다. 신비체험을 꼭 하고야 말겠다. 그런 각오로 기도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2, 3년까지 기도하면서 신비체험 하면 뭐해! 그런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못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1시간을 기다려서도 꼭 먹고야 말겠다. 이런 의지를 가진 사람은 신비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 기도에 들어가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나도 변화산의 체험을 주시옵소서! 기도하세요! 그렇게 기도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꼭 신비체험을 할 수 있도록, 변화산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기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되게 해주시고, 변화 산의 체험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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