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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보상은 무엇인가
  • 설교일2020-11-15
  • 성경본문마태복음 16:21-28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저런 염려와 걱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늘 염려 속에 살아가다 보니깐 어느 때는 문 듯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을까? 예수님에게도 어떤 염려나 걱정 같은 것이 있었을까? 예수님도 배가 고프실 때는 아직도 익지 않았던 무화과 열매를 따 먹으려고 했었고, 예수님이 피곤했을 때는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 한 곳에서 배 안에서 주무시기도 했습니다. 슬프 때면 우리처럼 눈물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라면 예수님도 우리처럼 무엇인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너희 몸을 위해서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적어도 예수님은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그런 염려, 걱정은 안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예수님 나름대로 무엇인가? 고민 같은 것들이 있지는 않았나?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본문 마태복음 16:2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라고 하는 그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셨다. 그런 말씀입니다. 비로소라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고 계셨고, 생각은 하고 계셨지만,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그랬겠습니까? 마음속에 그 생각을 담고 있으시면서도 예수님이 십자가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꼭 해야 할까? 꼭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이야기를 한다면 언제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어느 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비로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 이야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계셨다면 생각한 만큼 그것이 예수님에게는 고민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마음속에 담고 있던 생각과 그 이야기를 언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는가? 하셨냐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 때로부터이 때부터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때로부터 할 때 이때가 언제인가? 그것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신앙고백을 했을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비로소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와 베드로의 신앙고백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기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비로소 십자가의 대한 이야기를 하신 것일까? 예수님은 적어도 이렇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다고 하는 것을 받아드릴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예수님은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고 싶어서 제자들이 신앙고백을 할 때까지 아마도 기다리고 계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본인이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 생각을 예수님은 언제부터 하고 계신 것일까?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마음에 담고 계셨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 마귀에게 세 번의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 마지막 세 번째 시험에 우리가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4:8~9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렇게 예수님에게 제안합니다. 그러면 지금 마귀가 하는 저 말의 내용은 무엇이고, 예수님에게 시험 꺼리가 되는 것이냐? 마귀가 천하 만국을 보여주면서,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하는 말입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전 영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가 만약 내게 절을 하고, 경배만 하면 그 모든 영역을 너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내가 그렇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 정치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 경제 권력을 잡고 있는 그 권력자, 그 지도자들이 너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도울 것이고, 그들이 너가 하는 일에 무조건 따를 수 있도록 내가 해주겠다. 나에게 절만 하면 된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일이 수월해지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시험꺼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마귀의 시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 거절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이것을 거절하게 되면 주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주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마귀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에 에수님은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은 것이고, 핍박을 당하게 되신 것이고 결국 그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신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정말 마음속에 담고 있던 그 어려운 십자가를 비로소 제자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은 특별히 베드로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하는 것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6:2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항변한다 하는 말은 아주 거칠게 항의한다.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깐 베드로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붙들고 아주 거칠게 항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서는 안 됩니다. 죽으시면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생겨서도 안 되고, 우리가 생기지 않도록 내가 수단 방법을 가르지 않고 내가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베드로가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아한 것은 도대체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거칠게까지 항의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 십자가 이야기를 거칠게 항의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 십자가 이야기가 그렇게 거칠게 항의할 만한 그런 내용입니까? 그런 주제입니까? 그래서 어떤 분들은 생각하기를 베드로가 그렇게 말한 것은 제자로서 충정에서 나온 이야기다. 아니 선생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런 어떤 제자가 네! 그렇게 하시죠 뭐! 그렇게 말하는 제자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빈말이라도 예수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 들이 힘쓰겠습니다. 최선을 다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그것은 베드로의 충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베드로의 충정에서 나온 말이었다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이 베드로를 아주 심하게 질책하십니다. 그러면 이것이 베드로의 충정 속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면 도대체 베드로가 왜? 거칠게 항의한 것일까? 베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별로 어려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베드로는 본래 어부였습니다. 배도 있고, 그물도 있습니다. 늘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 나아갔습니다. 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그리고 예수님을 지금까지 따라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기가 지금까지 생계를 챙겨오던 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십니까? 베드로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것은 뭔가 주님을 따른 것에 대해서, 그 많은 것을 버린 것에 대해서 예수님을 열심히 따른 것에 대해서 무엇인가? 상응하는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어떤 기대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기대했던 보상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기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면 그런 기대가 없었다면 굳이 예수님에게 거칠게 그 문제를 가지고 항의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아니 내가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지금까지 열심히 예수님 한 분만 쫓아왔는데 아무런 보상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시겠다고 하니깐 아니 이것이 웬 말입니까! 아니 예수님! 지금은 돌아가실 때가 아닙니다. 더 계셔야 합니다. 어느 때까지 적어도 보상이 끝날 때까지 적어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보상을 주실 때까지는 계셔야지 어떻게 돌아가시면 됩니까! 그런 베드로의 속내가 거친 항의 속에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베드로를 아주 심하게 질책하십니다. 마태복음 16:23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것은 베드로를 보고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하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 광야에서 사탄이 했던 말과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광야에서도 사탄아 물러가라!” 그랬습니다. 똑같이 지금 베드로 앞에서도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한 마디 고백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칭찬을 들었습니까! 칭찬뿐입니까! 천국 열쇠까지 받았는데 아니 그런 베드로가 어떻게 이 사탄아 물러가라! 하는 그런 책망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올바른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00번 맞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았고, 메시아라는 것도 알았는데 그 메시아가 그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가 자기가 고백한 그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은 베드로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의 문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이면 열심히 예배에 참석합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일 날이 되면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매 주일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하고 교회에 와서 여러 가지 봉사도 하고,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일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어떤 이유로 여러분들이 이렇게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고, 기도하고, 교회에 와서 봉사를 하시는 것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유 중에 빼먹을 수 없는 이유가 내가 이렇게 수고한 만큼 열심히 한 만큼 어떤 보상을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이다. 하는 보상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 아닙니다! 목사님! 저는 그런 보상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물론 그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리 마음 가운데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종종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까? 도대체 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그것이 보상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것처럼 거칠게 항의하는 베드로의 마음도 예수님은 다 읽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6:24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나를 따라오기 위해서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린 것은 아주 소중한 일이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신앙 고백한 것도 굉장히 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끝까지 예수를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게 부도 있고, 힘도 있고, 명예도 있고 가진 것이 많지만, 그것이 내게 힘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주님을 위해서 다 포기해버리고, 있지만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다른 사람과 다툼이 있을 때 아니! 나를 어떻게 알고 그래!”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는 너가 무시하지 않을 수 있는 내가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는 내게도 무엇이 있다. 그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이 없는 자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 합니다. 그 자기 부인 속에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하고, 헌신한 것에 대한 보상에 대한 기대! 그것을 포기하는 것도 자기 부인 속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싶은 마음이 없으셨습니다. 그러지만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그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예수님이 당하신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고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각자가 우리가 지어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고난이 싫어서, 어려운 일 당하는 것이 싫어서 맨날 이것을 피하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그런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예수님을 계속해서 따라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여러분들이 계속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6:26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뭐가 있나! 세상을 다 얻었다 하더라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이다. 그런데 그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영생이고,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너희들이 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랐는데 저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무엇입니까? 하고 보상을 기대하는데 정말 너희들에게 주고 싶은 보상은 영생이고,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들의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들이 원하는 그 보상을 주기 위해서 내가 지금 십자가에서 죽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그렇게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27 보시겠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재림 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각 사람이라는 초점은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관심은 지금 베드로처럼,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을 하면서 주님을 따랐던 그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마지막 날에 너희들이 정말 자기 자신을 부인하면서 예수님을 믿었는지, 정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는지를 내가 판단하고, 너희들이 행한대로 내가 갚아 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꼭 알아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우리가 꼭 알아야 되고, 알기를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소중하고, 우리가 받은 영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기 위해서 많이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과 영생에 소중함! 그 가치를 정말 알게 되면 그러면 늘 감사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해서 배도 버렸고, 그물도 버렸는데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정말 굉장한 신앙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미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 영생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이미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이미 일꾼들에게 삵을 줘서 우리는 이미 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에수를 믿으면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다. 희생한다. 수고한다. 그 모든 것들은 이미 품삵을 받고 수고하는 것이고, 헌신하는 것이고, 희생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수고를 했고, 헌신했다는 이유 때문에 어느 세상적인, 물질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그런 것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보너스라고 합니다. 보너스를 받은 사람은 더 많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 그것은 우리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너스를 많이 받았다는 것을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말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그런 주님의 제자라고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런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이날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영생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은혜를 주시고, 그 깨달음이 날마다 새롭고, 더 깊어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또 그 일을 피하려고 하거나, 그 일에 게으르지 않을 수 있는 충성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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