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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무지
  • 설교일2020-10-18
  • 성경본문마태복음16:1-12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5.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11.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게 되면, 불편한 일도 많지만 손해를 보는 일도 많아집니다.

예를 들어서 증권이나, 펀드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으면서 증권에 투자를 한다든지, 펀드를 사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또 자기가 모르는 분야 뛰어들어서 창업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런 원리는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3달 정도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땅을 40년 걸려서 들어갔다. 그 이유가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에서 생기게 된 일입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었고,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불기둥으로 보호를 받으면서 그들은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너무나 그들이 무지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매일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고, 하나님께서 주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잘 모른다는 것이 그것이 말이나 될 수 있느냐? 그런데 여러분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것도 있지만 일부러 배우려고 애쓰지 않으면, 힘쓰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그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대한 배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그냥 알아서 배우게 되거나,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알게 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14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배우라라는 말씀에 확실히 강조합니다. 배우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배우라고 말씀하시느냐? 말씀인 성경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고, 배우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우는 일을 위해서, 알게 되는 일을 위해서 특별히 교회에 교사라는 직분을 세우십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28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그 다음 부터는 순서를 매기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직분이 사도고, 선지자고 그리고 교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도도 없고, 선지자도 없고 지금은 교사만 남은 것이 없습니다. 교사가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 하시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말씀하시는 그런 말씀이시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교사! 그러면 교사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 그러면 교사에게 배우는 제자들을 생각하게 되고, 배움을 생각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 대해서 배운다는 것!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이 아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말에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앙생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면 너희 하나님도 중요하고, 우리 하나님도 중요하지만 정작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좋습니다. 너희 하나님도 좋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아니면, 그것은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서 풍월을 읊을 줄 안다고 해서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절로 알아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장 마음 아파하셨던 일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신앙으로 지도해야 할 영적인 지도자! 영적인 교사들 조차도 영적으로 너무나 무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많이 아파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지도하고, 가르쳤던 사람들 중에는 2계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이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세속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렇게까지도 해야 한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얼마나 열심히 지켰겠습니까! 신앙의 열심에 있어서는 사실 그들을 따라갈 만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전해준 모세 오경 율법만 열심히 지켰던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자기들 만든 613가지의 규정과 규칙들을 만들어서 그것도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똑같이 그 조항들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열심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문제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사람들이 만든 규정이나, 규칙이 충돌하게 될 때 그러면 사람들이 만든 그 규정을 포기하고 율법을 따라야 하는데 끝까지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해서 고집합니다. 거기서부터 그들의 신앙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신앙에 열심을 냈는데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깐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열심을 내고있는 자신에 대한 관심만 생기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처럼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자기들의 그 열심!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는 자기들의 행위! 이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독보여 주길 원하고, 사람들이 그런 바라봐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깐 알게 모르게 그런 자신들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대한 관심보다는 사람들의 관심! 자기의 대한 관심이 크다보니깐 신앙이 그때부터 변질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꾸 사람을 의식하게 되니깐 신앙이 위선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신앙이 영적으로 무지하게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 한 계열은 사두개인들인데 이들은 주로 제사장들입니다. 다 제사장들이 대부분 사두개인들입니다. 이들은 당시의 사회에 지도계층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큰 장점은 모세가 전해준 율법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고,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613가지의 사람들이 만든 규정이나 규칙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은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회 지도층에 있다 보니깐 자연스럽게 세상의 권력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과 멀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과 가까이 하다 보니깐 결국은 그들의 신앙이 어느 날부터 세속화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천사라는 존재도 믿지 않고, 부활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고, 영적인 존재나, 영도 믿지 않게 됩니다. 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항상 불안한 것이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들이 백성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 영향력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 하는 것에 대한 불안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예수님이 일반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가지는 것을 우리가 막아야 한다. 영향력이 퍼져가는 것을 어떻게든 우리가 저지를 해야한다. 이 부분에는 사두개인도, 바리새인도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예수님에게 시비를 겁니다. 시비를 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백성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예수님에게 향했던 영향력을 어떻게든지 좀 멀어지게 만들고, 영향력을 감소시키려고 하는 그런 의도에서 계속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잘 안 먹히면, 그들이 마지막으로 꺼내 드는 카드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고, 하나님이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낸 메시아라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표적을 보여달라! 항상 그 표적을 보여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6: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지금도 표적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표적을 요구하는 그 타이밍이 참 중요합니다. 어느 때 표적을 요구하느냐? 하는 그 타이밍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는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몇 장예요? 14장입니다. 그리고 15장에 오면 비슷하게 보리떡 일곱 개로 이번에는 4,000명을 먹이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6장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이나, 보리떡 일곱 개로 4,000명을 먹이신 기적이나 이것은 예사로운 기적이 아닙니다. 이 두 번의 기적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삽시간에 예수님께로 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다시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드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여달라! 우리 생각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든지, 보리떡 일곱 개로 4,000명을 먹이신 그 기적만 보더라도 예사로운 기적이 아니니깐 그 정도의 기적이라면 예수님을 얼마든지 메시아로 믿을 법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 기적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생각도 그런데 예수님도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이런 기적을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일 것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어떻게 너희들이 내게 또 표적을 보여달라고 그러느냐!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마태복음 16:2~3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같은 하늘이라도 언제 그 하늘이 붉어지느냐에 따라서 그날의 날씨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땅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하늘이 붉으냐 저녁에 하늘이 붉으냐를 보고 아 오늘 날씨가 어떻겠구나! 다 그렇게 짐작하고, 예상을 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런 것처럼 예수님께서 기적을 한번, 두 번 하신 것도 아니고 얼마나 많은 기적을, 얼마나 많은 다양한 기적을 행해 셨습니까! 아니 그런 것을 보면 대충이라도 아! 이분이 보통 분이 아니구나! 이분이 메시아일 가능성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날씨에 대해서는 잘 알아 맞추면서 어떻게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면서도 왜 이렇게 무지하냐! 아침에 날이 붉거나, 저녁에 날이 붉거나 하늘이 붉은 것은 똑같아도 그러나 그 결과의 날씨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꼭 예수님만이 병자를 고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많은 의사들이 있어서 많은 병자들을 고쳤지만, 그러지만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친 것과 당대에 의사들이 병자들을 고친 것은 그 결과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것만 보더라도 예수님은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표적을 구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몰랐던 그 이유를 예수님이 지적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6:4 말씀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너희들이 표적을 구하는 것은 너희들이 악하고 음란하다는 것입니다. 이 악하고 음란하다는 표현은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다. 그것을 표현할 때 악하고, 음란하다. 그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너희들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내가 행하는 많은 기적을 보고도 너희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고, 계속해서 표적을 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너희들에게 내가 어떤 표적을 보여준들 너희들이 그것을 표적으로 믿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하나밖에 없는데 요나의 표적처럼 내가 너희들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는 죽음과 부활의 표적밖에 없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이 마지막으로 보여준 표적까지도 결국은 믿지를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더 말을 하기 싫어서 그곳을 떠나시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곳을 떠나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만 영적으로 무지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 조차도 영적으로 무지했다는 사실이 들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6:5입니다.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지금 모든 제자들의 관심이 무엇이냐면 지금 이동 중에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는 없지만, 하루 길일 수도 있고, 이틀 길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떡을 챙기지 못했다. 그것을 지금 제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자들에게 걱정하고 고민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의 문화가 제자들은 랍비, 선생을 공양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4:6~8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선생님의 식사를 준비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에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에 들어갔다는 말씀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그것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6:6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명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했을까? 어떻게 그것을 받아 들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당연히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하셨으면 그렇게 알아들었겠죠! 다르게 알아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정말 그럴까? 마태복음 16:7 보시겠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 그러니깐 아! 예수님이 우리가 떡을 챙기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아시고, 지금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이구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 그렇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분명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제자들은 우리가 떡을 챙기지 못한 것으로 예수님이 그러는구나! 그렇게 이해를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누룩이라고 하는 것은 떡과 모양이 매우 흡사하다든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면 순간적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고, 착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누룩과 떡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모양이 다르거나, 크기가 비슷하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 알아들을 수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 설명하십니다. 마태복음 16:8~10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가 이 두 번의 기적이 어떤 기적인지 너희들이 안다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깨달았을 터인데 너희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더라면 지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말씀하신 그대로 알아 들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지금 예수님을 메시아로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엉뚱하게 받아 드리고, 엉뚱하게 이해한 것이라고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고, 다 자기 위주로 듣고,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 교훈을 조심하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공정 관념이 생기고, 편견이 만들어지면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엉뚱하게 생각하고, 엉뚱하게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들인데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서 무지할 수가 있는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만큼 예수님을 바로 안다는 것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바로 안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제자들도 다른 유대인처럼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메시아!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말씀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받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면 2,000년 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오늘날에도 있는 것인가? 만약에 오늘날에도 바리새인들이 있고, 사두개인들이 있다면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오늘날에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을 수 있고, 교회 밖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라는 것을 예를 들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고, 하나님 들으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에 열심을 내다보면 어느 순간에 자시처럼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주변에 정말 자기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깐 자기가 봐도 대견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없어지고, 열심히 기도하는 자기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너무나 특별하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나를 좀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가 이렇게 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고,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는 영적인 사람이다. 하는 것을 자꾸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때부터 관심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기 자신에게 있고,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게 되기를 바라니깐 그 신앙이 위선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무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전반에 걸쳐서 그런 예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그 교육을 조심하라는 것은 그들처럼 되지 말라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주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너희들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그 부분에 있어서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또 우리 사회에 큰 갈등 요인중에 하나가 동성애 문제, 차별금지법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 말씀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것이라서 잘못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생각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다 똑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서도 반대하는 사람 있고, 찬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들 가운데도 어떤 교회는 반대하는데, 어떤 교회는 찬성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찬성하는 사람이나, 찬성하는 교회에 있어서는 저는 뭐 비난을 하거나, 비판할 마음은 없지만, 그들이 왜? 찬성을 하는 지 듣다 보면 어쩌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구약에 권력의 밀착 되어서 그 신앙이 세속화 되었던 사두개인의 모습과 그렇게 흡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들은 교회밖에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가치와 전혀 반대되는 그런 잘못된 이념을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확신해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우리 사회에서 그런 것을 실현해보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생각 없이 듣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영적인 눈이 어두어지기 시작하고, 영적인 감각이 무디어지기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말씀으로 들리지가 않는 것입니다. 제자들처럼 분명히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어뚱하게 그 말씀을 생각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눈으로 다 볼 수 있도록 이렇게 행동을 하셨지만, 그것을 우리 눈으로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있는 자는 받게 될 것이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되리라!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에게 있게 된 것은 어떻게든지 우리가 잃어버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고, 우리가 있는 것 때문에 할 수 있으면 더 많은 것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신앙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함께 임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를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영적인 무지를 항상 조심할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지혜와 깨어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또한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배우고자 하는 열심과 열망이 항상 우리 마음 가운데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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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관리자2021-02-14
110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관리자2021-02-07
109신앙생활은 섬김의 삶입니다관리자2021-01-31
108처음과 나중은 바뀔 수 있다관리자2021-01-24
107우리는 무엇을 버렸는가?관리자2021-01-17
106부자 청년의 질문관리자2021-01-10
105성령이 답입니다관리자2021-01-03
104결혼과 이혼관리자2020-12-27
103용서관리자2020-12-20
102길 잃은 양의 비유관리자2020-12-13
101천국에서는 누가 큰 사람입니까?관리자20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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