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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설교일2020-02-09
  • 성경본문마태복음 8:1-4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인 마태복음 8장은 마태복음 5, 6, 7장하고 연결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5, 6, 7장의 말씀을 이미 다 생각을 했지만,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1-2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이렇게 시작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태복음 7장에서 끝이 납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시작된 이 예수님의 말씀을 가리켜서 흔히 산상보훈 또는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왜 하필 예수님이 산상수훈과 산상보훈을 가리키실 때 산에 올라가셔서 가르쳤을까? 하는 것입니다. 산에서 가르치시면 훨씬 학습효과가 크고, 사람들이 배우기가 더 용이하기 때문일까? 그런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이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전하시고, 가르치셨지만, 항상 산에서 가르치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가르치실 때는 산위에 올라가셔서 가르치실까? 아마도 예수님은 모세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습니다. 그리고 산에 내려와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가 받아온 율법의 내용을 가르칩니다. 그 율법의 내용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선민들은 이방인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처럼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처럼 사는 것입니까? 그 내용이 다 율법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고, 율법이 가르치는 대로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외치셨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다 기억하시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다른 말로 하면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게 되는 천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이미 이 땅에 오신 그날부터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이 땅에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시작된 이 영역 안에 들어갈 수 있어야지만, 하나님 나라에 시민이 될 수가 있고, 하나님 나라에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것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르침을 받았거나, 배웠던 내용하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배우기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고 살면 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예수님은 이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할례를 받든지, 안 받든지 그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 들어와야만, 그 영역 안으로 들어와야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가 있고, 하나님 백성이 될 수가 있다. 그러니 묻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처럼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율법을 배우며 살았는데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있는 그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면,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가르치셨던 산상보훈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산상보훈의 결론으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처럼 지혜로운 자요! 내 말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모래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그렇게 산상보훈을 끝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8:1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언 뜻 생각하기에는 산위에서 가르치실 것 다 가르쳤으니깐 더 가르칠 것이 없어서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 오셨다. 물론 그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특별히 예수님이 산을 내려오셨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산위에서 가르치셨던 그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를 이제 예수님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그 나라를 확장시키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 나라로 들어와라! 하고 초청하시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그 일을 하시려고 산 아래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 보면 그러면 그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다고 하는 그분은 누구며, 그 하나님의 나라를 초청하는 그분은 도대체 누구냐? 그것은 메시아가 아니면,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누가 메시아라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메시아다! 이것을 사람들에게 들어내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산에서 내려오셨는데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예수님이 만났던 중요한 사람!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8:2-3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첫 번째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병환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산에서 내려오셨는데, 내려오시자마자 예수님이 처음으로 만났던 문제가 나병이라고 하는 문제에 붙이치게 됩니다.

나병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는 문등병이라고 그랬고, 요즘에는 한센병이라고 통일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나병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말씀을 전할 때는 그냥 나병이라고 하겠습니다.

나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나균에 의해서 전염이 되는 병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만 하더라도 병이 전염이 된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나병은 전염이 되는 병이기 때문에 나병에 걸린 사람들하고, 접촉을 하거나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나병은 부정한 병이기 때문에 그와 접촉을 하게 되면 너도 부정해지니깐 가까이 하지 말라!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격리를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정하게 된다는 의미가 무엇이냐? 일단 부정하게 되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고, 제사를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과 같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부정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병환자에 대한 어떤 생각이 있습니까?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부정하게 되어서 내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병환자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없다? 없습니다. 그리고 나병이라고 하는 것은 병이 진행이 되면서 손가락도 빠지고, 코도 뭉그러지고 하기 때문에 자신이 보더라도 굉장히 혐오스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불치의 병인데다가 격리가 되어서 살아야 합니다. 누구하고 살아요? 자기들하고 똑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고침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 속에는 나병은 특별히 하나님 앞에 저주 받은 병이다. 이런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병환자를 보면 얼마나 지은 죄가 많으면 하나님 앞에 저런 저주를 받아서 저런 나병이 생겼을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니깐 똑같은 병에 걸렸더라도, 똑같은 부정한 병이라고 할지라도 나병환자들은 타인에게서 아니 가족들에게도 조차 눈꽃만큼의 동정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나병환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은 공식적으로 나병환자가 발생하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나병 균이 다 사라졌는지, 새로운 나병환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도 나병환자들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한데 나병환자들이 그 나병을 낫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간을 먹으면 나병환자의 병이 낫는다. 이런 소문이 나서 이 나병환자들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어린아이를 유괴해 간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소문을 낸 것은 모르겠지만 얼마나 나병환자들의 상태가 절박했으면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나을 수만 있다면 나병환자들 만에 절박한 마음이 그런 식으로 와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그 병이 나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바로 그 나병환자가 예수님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그 나병환자가 예수님에게 절하면서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을 보면 우연한 만남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는 그 시간에 나병환자가 지나가다가 아주 우연치 않게 예수님을 만나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생각하기에는 확률적으로 참 생각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랬다면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실 때까지 어떻게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니요! 잠깐만요! 이 나병에 대해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하나님께 저주 받은 병이라고 생각하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필요가 합니다. 다시 보요주세요! 민수기 12:10 말씀을 보면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미리암에 모세를 비방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자를 비방했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미디암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 심판이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나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역대하 26:19을 보면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그런데 이 웃시야 왕이 잘한 것도 많은데 굉장히 교만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분향을 하는데 이것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이 어떻게 생각을 했냐면 내가 왕인데 내가 못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분향하는 것이 뭐가 대수로운 일이라고 그리고 자기가 분향을 하려고 하니깐 제사장이 아니 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룰이기 때문에 왕이라고 할지라도 하셔서는 안 됩니다. 이일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깐 웃시야가 버럭 화를 내는 것입니다. 내가 왕인데 왜! 내가 못하냐! 그때 하나님이 그를 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뭐가 생깁니까? 나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나병이라고 하는 병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으로 생긴 병이다. 이런 생각들을 많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 우연이 아니고, 기다렸다가 찾아 왔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마태복음 8:2 보면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이 부분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절한다. 십계명 2계명에 보면 너희들은 어떤 신상도 만들지 말고, 그 앞에 절하지 말라! 하는 것이 두 번째 계명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외에는 절대로 어떤 신상이나, 사람들 앞에서도 절하지 않습니다. 그 계명을 지키려고 그런데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에게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무엇으로 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그동안 이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나기위해서 많은 연구도 하고, 소문을 들어서 생각도 하고, 그러다가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객관적으로 보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지금 예수님이 혼자 계신 것이 아닙니다. 주변에 제자들도 있고, 산위에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이 내려오실 때 다 같이 내려왔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주변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병환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어떻게 합니까? 기겁할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들 어떻겠습니까? 지금 똑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런 상황을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나병환자들에 대해서 대하는 태도는 가까이 가지도 못합니다. 가까이 가서 이야기를 하다가 부정해지면 안 됩니다. 멀리서 막 욕을 합니다. 너희들이 사는 곳으로 가라! 너희들이 사는 동네로 가라! 어디라고 여기를 나타나느냐! 그래도 예를 들어서 도망을 안가면 돌을 들어서 어떻게 해요? 집어 던지는 것입니다. 가라! 그러니 나병환자가 사람들 많은 곳에 괜히 나타났다가는 돌에 맞아서 죽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 나병환자가 그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 앞에 찾아 온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간절함입니다. 그 나병환자의 입장에서도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압니다. 그러나 그의 간절함은 어쩌면 위험하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가 내가 고침을 받을 수 있고, 내가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있는 그런 기회가 될 수가 있다. 그런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성경에서는 믿음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낫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마태복음 8:2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주님!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이 나병환자가 어떤 생각으로 예수님에게 하는 것일까? 언 뜻 생각하면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제가 이병이 나을 수도 있지만, 주님이 원치 않으시면 낫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뜻으로 말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그렇게 말하는 자기 처지를 돌아보니깐 자기가 봐도 혐오스러운 모습입니다. 정말 자기의 처리를 생각하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예수님에게 낫게 해 달라! 고쳐 달라! 이런 부탁을 드릴만한 처지도 못 되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면 절대로 예수님 앞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감히 고쳐 달라!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는 어떤 생각이냐? 내 형편이나, 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병이 얼마나 깊으냐?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우냐? 내가 정말 주님에게 부탁할 만한 아무런, 그럴 만한 조건이나 그런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주님이 원하시느냐? 원하시지 않느냐?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병환자의 믿음입니다. 내 처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냐! 원하시지 않느냐! 그것만이 중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말을 듣고, 굉장히 감동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안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처지를 먼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남에게 부탁을 하러 갈 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못갑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병환자의 처지를 다 아십니다. 그런 마음입니다. 다 읽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3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그 나병환자의 질문 하나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문등병자를 보면 치료해주고 싶고, 고쳐주고 싶은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 주님의 마음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가 있든지, 나병환자처럼 내 처지를 생각하지 말고, 내 처지를 생각하면 많이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면 그 마음 하나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간구하며, 주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기도에 다 응답하시고, 우리 소원대로 다 들어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북한을 위해서 365일 릴레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그런 기도가 가당치도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한다고 해서 북한이 변화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한다고 정치권이 변화겠습니까! 우리가 뭐라고 그 생각을 하면 기도를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생각을 하면, 그런 기도를 드릴만한 믿음도 없어 보이고 우리가 그렇게 한다고 변화할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면, 아멘! 주님이 원하시면 이 나라를 바꿔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북한도 바꿔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기도의 현장에서는 꼭 우리의 생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A이란 집사와 B라는 집사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A의 집사님의 기도는 응답을 주셨는데, B라는 집사의 기도는 응답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응답받지 못한 B집사님은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변화거나,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하십니다. 그러면 항상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봅시다. A라는 집사와 B라는 집사가 똑같이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A라는 집사의 기도에도 응답을 하시고, B라는 집사의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것! 하나하고, A의 집사님의 기도에는 응답을 하셨는데, B라는 집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경우하고 그 두 경우 중에서 하나님에게는 어떤 것이 더 쉽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생각해보셨습니까? 하나님에게는 어떤 것이 쉽겠습니까? 물어볼 때마다 항상 염려가 되요?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A의 집사 기도와 B라는 집사의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것 하나하고, A의 집사님의 기도에는 응답을 하셨는데, B라는 집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경우하고 하나님에게는 1번이 쉬어요? 2번이 쉬어요? 1번이 쉽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기도의 응답은 아무런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응답해주시 않으시게 되면 왜 응답하지 않으셨는지를 하나님이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하나님에게는 물론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에 대해서 사사건건 다 이해시키고, 설명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이든지 간절하게 간구하면 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인 것에도 불구하고 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설명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더 감사하게 되고, 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리게 됩니다. 만약에 이 땅에서 그 대답을 듣지 못하면 하늘나라 가서라도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구분 할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거기까지가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깨끗하게 하고, 안 하시는 것은 누가 하실 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이제 주변 나라를 다 정복을 하고, 중국처럼 한 나라로 통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왕권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래서 느부가넷살 왕이 자기의 왕권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 두라평지라고 하는 평평한 곳에 신상을 하나를 세웁니다. 무려 신상의 높이가 27M 넓이가 3M입니다. 그렇게 큰 신상에 다 금으로 칠했습니다. 그러니 평지에 그렇게 높은 신상이 서있는데 금으로 칠했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햇빛이 비치면 볼만합니다. 지금이야 높은 빌딩들이 많으니깐 27M 신상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 높은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27M 되는 그 신상이 금칠해서 번쩍번쩍 빛이 난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 금 신상을 제막식을 하는 날 느부가넷살 왕이 문무백관을 다 소집을 합니다. 다 모인 자리에서 신하하나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앞으로 피리, 나팔, 수금 그밖에 음악소리가 들리면 모두가 다 이 금 신상을 향해서 절을 해라! 절하지 않는 자는 용광로 풀무 속에 던질 것이다. 이것이 왕명입니다. 이렇게 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가 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각 누가 왕에게 고발을 했습니다. 왕은 다니엘과 이 세 친구에게 굉장히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고발이 들어 왔으니깐 부릅니다. 왕이 직접 치조를 합니다. 그런 고발이 들어 왔는데 이것이 사실이냐! 그랬더니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왕이 오히려 놀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너무나 좋아 하는 아이들인데 이아들을 잃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혹시 너희가 착오가 있었거나, 그 이야기를 못 들었거나, 오해가 있었을지 모르는데 지난일은 그냥 지난일로 치고 앞으로는 반드시 소리가 나거든 절을 해야 한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 수없이 너희들을 용광로 풀무 속으로 던질 수밖에 없는데 어떤 신이 나로부터 너희들을 구원해 주겠느냐!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말치고는 엄청 교만스럽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왕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왕에 말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다니엘 3:17입니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우리는 이렇게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입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3:18입니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반드시 왕의 손에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다니엘의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구해주고, 안 구해주는 것은 누구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풀무불에 던졌고, 그 뜨거운 불 하나가 머리카락 하나 태우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해주시고, 구원을 해주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나병환자에 사건을 통해서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런 문제, 저런 문제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나병과 같은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 격리되어서 살아야 하는데 그리고 혐오스럽습니다. 사람들에게 조금도 동정을 받지 못해!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죽어야 하는 문제만큼 우리 인생에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는 그런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들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에게 간청을 했을 때 그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들에게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다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다 문제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더 큰 문제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어떻게 떠밀려서 겨우겨우 주님 앞에 나오기는 했는데 이 나병환자처럼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그 문제를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정말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나병환자처럼 간절함 그리고 어떻게든 이 문제를 가지고 주님을 만나야 되겠다. 주님을 만나서 나의 이 간절함을 내가 주님에게 알려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이 정말 우리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지금이나, 오늘이나 여전히 동일하신 마음이라면 우리들이 정말 어떤 문제든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가서 주님이 원하시면 이 문제를 해결 받을 수 믿습니다. 말을 하게 될 때 왜 주님이 해결해 주지 않겠습니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주님의 귀한 음성을 우리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나병환자처럼 간절함이 있게 해주시고,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도 허락해 주옵소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믿음의 기도를 하게 하시고, 기도의 응답도 체험할 수 있는 신앙되게 하여주옵소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주님의 그 음성을 우리들에게도 들려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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