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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은 신앙의 핵심 가치 중 하나입니다
  • 설교일2019-10-06
  • 성경본문마태복음 5:21-26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구원의 관점으로 보면 그 내용이 크게 율법과 복음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율법의 내용을 기록한 책이 구약성경이고, 복음의 내용을 기록한 책이 신약성경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내용인 율법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런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으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고, 복음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나라다. 이것이 일관된 예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율법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율법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러면 율법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냐? 그리고 왜?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냐? 사실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내가 이 땅에 왔다. 그 질문도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도 한번 들어서 금방 이해가 될 수 있는 그런 쉬운 답변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답변을 쉽게 설명을 하십니다. 설명하는 내용이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인데 21절에서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두 가지 내용을 말씀 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 하는 것은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에서 여섯 번째 계명으로 금한 사항입니다. 여섯 번째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 하는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어기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너희들이 들었거니와 하는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그 사실을 들어서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런 말씀입니다. 그 백성들은 누구에게서 그런 말씀을 들었겠습니까? 그 당시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권한은 오직 서기관에게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기관이 율법을 가르쳤을 때 정말 일점일획이라도 빼놓지 않고,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래서 일반백성들은 그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을 통해서 듣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살인하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그 요구를 어기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된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요구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지 살인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생각에 우리는 율법의 요구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깐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입자에서 보면 능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율법의 요구대로 우리는 다 응했기 때문에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살인하지 말라! 라는 계명을 주셨는데 그 참뜻이 무엇인지를 내가 이제부터 설명을 하겠다. 너희들은 물리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살인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522절에 이렇겟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이 라가라 라는 말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하나의 욕설입니다. 마치 우리식으로 말하면 천치! 밥통! 이런 아주 인격을 모독하는 욕설이 라가라 라는 욕설입니다. 형제에게 분노하는 자! 형제에 대해서 바보 멍청이라고 무시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고 인격을 무시하는 자! 이러한 자들도 살인하는 자와 똑같이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 더 쉽게 설명을 하면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살인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럴만한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 생각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없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열 받게 해서 내가 화를 참지 못해서 죽였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사람에게서 살해 동기는 분노입니다. 금품이 탐이 나서 그 금품을 자기 것을 만들려고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말이 됩니다. 그것은 금품에 대한 욕심이 살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또는 딸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내가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이야기가 됩니다. 원수를 갚는다고 하는 분명한 동기가 있어서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이렇게 각자 사람을 죽일 만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이 마침 사람을 죽일만한 기회에 잘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이지 못했습니다. 죽이려고 마음에 결심을 하고 시도를 하려는 순간 만약에 내가 실패를 한다든지 또는 살해를 한 후에 내가 붙잡히게 되면 내가 형벌을 치러야 하는데 그 형벌을 치를 생각을 하니깐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죽일 마음이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니깐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데 주저주저 하게 된 것입니다.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정말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죽여 버리고 말겠다. 그렇게 결심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꼭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꼭 죽이는 것이 원수를 갚는 것일까? 이런 생각 때문에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이미 너희 마음속에 그런 살해동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살인 한 것과 똑같은 죄를 지은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이미 살해동기가 너희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은 이미 살인에 대한 씨가 너희들 마음속에 있었는데 그 씨가 열매로 나타날 만한 어떤 환경과 여건이 조성 되지 않아서 그것이 씨앗으로 남았을 뿐이지 거기에 형성이 되고,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졌으면 그것은 금방 물리적인 살인으로 연결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속으로 품은 죄도 똑같은 죄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싶어 합니다. 저에게도 이렇게 질문하고 싶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니 목사님! 그렇게 마음으로 지은 죄가 다 죄고,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다 죄라면 아니 죄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 말이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주 주저하지 않고 말합니다. 머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지 못한다. 아예 대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 율법의 요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된다가 율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부터, 생각부터 그런 생각이 아예 없어야지 마음이나 생각에 그런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요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알면 알수록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사람은 어떻게 절망하게 됩니다. 누가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그럴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아무리 작은 죄든, 큰 죄든 죄라고 일단 판정이 나면 그것은 다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살인죄는 굉장히 무거운 죄입니다. 도둑질한 것은 살인보다는 덜한 죄입니다. 그 죄가 얼마나 무겁고, 가볍냐에 따라서 받는 형벌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우리가 하찮은 죄라고 여기는 죄도 그것이 분명히 죄라면 큰 죄든, 작은 죄든 다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서 형벌에 등급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가고, 그것보다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은 연옥에 가고 그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죄라고 판결이 나면 다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큰 죄만 살인하지 말라! 이런 율법의 계명만 무겁게 생각하고, 별거 안인 듯한 죄들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경향을 우리가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또 예를 듣습니다. 마태복음 523~34절입니다.

마태복음 523~3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생각나거든 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큰 잘못을 한 것은 우리가 생각을 하고, 말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크게 잘못한 것은 다 생각이 납니다. 그것은 아무리 억지로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형제에 원망들을 일이라는 것은 너무 사소한 일이기 때문에 그때는 잘못이라고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것을 죄라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문 듯 아! 그때 아 내가 잘못한 것 같구나! 그것도 잘못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에게도 있을 수 있고,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율법에 의하면 우리가 먹어야할 음식이 있고,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음식이 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다 보니깐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깐 그때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음식이 그 옆에 섞여있는지 모르고 부정한 음식을 먹은 것입니다. 그러면 깨달았으면 그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 앞에 가서 해결을 해야 합니다.

교회 주변에서 지갑을 하나 주었는데 이렇게 열어보니, 주민등록도 없고, 연락처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보니, 돈도 한 200만원 있다든지, 2,000만원이 들었으면 경찰서에 가져다주겠는데 보니깐 고작 2만원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그러다가 가졌습니다. 그러데 며칠 지나니깐 소문에 어떤 집사님이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깐 2만원 밖에 안 되는데 이제 와서 이야기하기도 좀 쑥스럽고 그리고 그 집사님이 잃어버린 지갑이 내가 주은 지갑이라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그냥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려고 그러는데 자꾸 내가 주은 지갑이 그 여자 집사님이 잃어버린 지갑이라는 생각이 자꾸는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합니다. 확인을 해보니깐 그 여자 집사님의 지갑이 맞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율법에 의하면 해결하는 과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해결하기 위해서 첫 번째 단계는 그 사람을 찾아가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고백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부정한 음식을 내가 먹었다. 하나님! 제가 그날은 배가 고파서 이것이 부정한 음식인지, 먹어서 안 되는 음식인지를 전혀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그냥 제가 허겁지겁 제가 먹었습니다. 그러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깐 제가 부정한 음식을 조금 먹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제가 먹지 말아야할 것을 먹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갑 주인을 찾아가서 이것이 집사님 지갑이 맞습니까? 맞다! 집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처음에 주소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어서 돌려 줄 길이 없어서 그냥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집사님이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 지갑이 집사님이 잃어버린 지갑이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해서 내가 돌려드릴 생각을 못했는데 예배를 드리는 순간 문 듯 그 생각이 나서 오늘 확인해보니깐 집사님 지갑이 맞습니다. 제가 진작에 돌려 드렸어야 하는데 돌려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일단은 잘못을 시인 합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1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이지갑을 돌려 줄 때 그냥 돌려주면 안 됩니다. 속에 2만원이 있잖아요! 20% 할증을 붙여서 24천원으로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그리고 나서 세 번째는 이분에게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아휴! 괜찮습니다. 제가 다 이해를 합니다. 하고 사과를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용서까지 받으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가서 마지막으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가 5가지가 있습니다.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권제 그다음에 소제입니다. 그런데 이 때 드리는 제사가 속권제입니다. 속권 제사입니다. 그 속권 제사를 드려야만 그 사건이 완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의 요구가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그 집사님에게 가서 용서를 구했는데 집사님이 용서를 안 해줍니다. 평소에 감정도 있었던 차에 당신은 지갑을 안돌려 주려고 처음부터 작심했지! 나는 당신의 그 마음을 믿을 수가 없어! 용서를 안 해주면 어떻게 되느냐?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만약에 용서를 끝까지 안 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 문제는 끝까지 해결이 안 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그런데 용서를 안 해주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이분이 용서를 안 해주면 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용서를 안 해주는 그 사람이 나를 계속해서 죄 가운데 머물게 한 장본인이 됩니다. 그래서 그분도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그를 계속해서 죄 가운데 머물게 하는 큰 죄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끼리는 잘못했으면 반드시 율법에 따라서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고, 배상을 하고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어떻게 해야 한다. 용서를 무조건 해줘야지 자꾸 딴소리하면 안 됩니다. 용서를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물과 연관시켜서 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냥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 안 받으시니깐! 원망들을 만한 일을 끝내고 나서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면 오늘 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지만 드리는 예배마다 다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고, 드리는 예물마다 다 하나님이 받으셨겠는냐?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안 받으시더라도 예배를 드리는 우리 입장에서는 자기만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든지, 안 받든지 그저 내가 와서 조용한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 나면 뭔가 마음에 안정감도 생기고, 마음에 평안도 좀 오고, 그것도 예배드린 자가 얻을 수 있는 유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면 예배를 드리는 일은 거기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면 언제나 제가 반복해서 드립니다. 하나님이 뭔가를 받으시면 절대로 그냥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받으시면 되돌려 주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그렇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입니다. 예배를 받으시면 반드시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예배! 늘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만 드리면 우리의 인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주일에 한번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 일주일을 살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은혜를 가지고 가서 일주일을 살다가 다시 주님 앞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면 다음 주를 살 수 있는 은혜를 다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그러니 우리가 예배만 하나님 앞에 제대로 드리면 크리스천 삶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못 드리는 것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 바로 그러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혼자 생각해보면 우리 신당중앙교회 교인들도 주일 마다 많은 예물을 드리는데 이 예물이 하늘나라에 이렇게 상달 되지 않고, 그냥 교회에 쌓여있는 예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교회의 장부에는 기록이 되어있는데 하늘나라 생명책에는 기록이 안 되어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쌓여있는 그 많은 예물들 제고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빨리 화해할 일이 있으면, 화해를 해야지 그것이 다 어떻게? 하나님께로 다 올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참 재미있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 사람하고 화해를 하고 오는데 예물은 하나님께 나두고, 가서 화해를 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드렸던 예물을 가지고 가서 화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예물을 가지고 갔다가 화해를 하려고 시도를 했는데 잘 안 되면 그냥 하나님께 안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예물을 나두고 가라는 이야기는 무엇이냐면 예물은 여기 있으니깐 어떻게든 가서 화해를 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만큼 하나님은 그가 드리는 제사와 제물을 받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기를 원하실 때는 이렇게 예배시간에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꾸 뭔가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화해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계속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것이 남편과의 화해일 수도 있고, 같은 교회 집사님과 권사님과의 화해일 수도 있습니다. 그 깨달음을 줄 때 그것은 우연히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야지 내가 너희의 예배를 받을 수가 있다. 그래야 너가 나에게 주는 예물을 내가 받을 수가 있다. 그래서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럴 때에는 바로 순종을 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자꾸 미루고, 미적미적 하다보면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한번, 두 번 하다보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힙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그냥 내가 좋아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고, 내가 좋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하나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얼마나 시급한 과제로 여겨야 하는지 또 예수님이 마태복음 525~26절에서 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525~26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지금 어떤 분이 내가 빚을 못 갚았더니 나를 끌고, 고소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재판을 받으러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냐면 아직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에서 할 수만 있으면 그 사람하고 화해를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가는 도중이라도 화해를 해야지 화해를 못하면, 틀림없이 재판관에게 재판을 받아서 감옥에 갇히게 되면 1원이라도 빚진 것을 다 갚지 못하면 너 못나온다. 항상 성경은 이 빚을 죄로 비유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 때 작은 죄든, 큰 죄든 이 땅에 있을 때 빨리 그 죄 문제를 해결해야지 자꾸 미루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그냥 죽으면 그 죄 값으로 지옥에 들어가게 되고, 지옥에 들어가면 너의 죄를 아무리 적은 죄라도 그 죄 값을 치루지 않고는 거기서 못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크리스천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과제가 화해입니다.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 여겨야할 문제도 화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 가치 중에 핵심 가치가 화해입니다. 화해!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고, 나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고, 다른 이웃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근데 화해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렵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화해를 하려고 애를 씁니다. 자존심도 내려놓고, 열심히 해서 결국 화해를 하는데 성공을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은 화해의 기념으로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가장 좋은 선물을 줍니다. 이 재미 때문에 또 화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처럼 우리에게 화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살아가면서 급한 일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보다도 급한 일은 없다. 화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도 많지만, 화해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이것부터 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에 순종해서 내가 어떻게든 화해를 해야 되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여러분들이 정말 화해를 성공시켰을 때 그것을 기념하는 귀한 선물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형제들에게 원망들을 만한 작은 일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막히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 작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해주고, 화해하는 일을 주저하거나, 미루지 않을 수 있는 은혜도 주시옵소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화해를 시도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선물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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