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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족보속의 여인들
  • 설교일2018-11-04
  • 성경본문마태복음 1:1-16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본문내용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설교내용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 들은 나름대로 진리라고 생각하는 내용을 정리한 그렇게 기록한 책들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그것을 경전이라고 부릅니다. 유교에는 사서삼경이 있고, 불교에는 불경이 있고, 이슬람에는 코란경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기독교에는 뭐가 있어요? 성경 또는 성서가 있습니다.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거룩한 경전 성서 그러면 거룩한 책 그렇게 부릅니다. 거룩하다는 의미는 다른 책들하고는 구별이 된다. 그런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과 성서는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책들과 구별이 되는 가? 이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니 분명히 성경도 사람들이 기록한 것인데, ? 사람들이 기록한 그 책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러는 것일까?

예를 들면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열둘 제자였던 마태가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했지만, 그것은 마태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마태라는 사람을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하나님의 생각을 기록하게 했기 때문에 그래서 마태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을 기록 한 것인지? 아니면 마태의 생각을 기록한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증거는, 증명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주장을 합니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들고 다니는 이 성경은 신, 구약을 합쳐서 66권으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성경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가 쓰여지고,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때까지 얼마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 성서학자들 관에 의견이 좀 다르지만, 최소 1,200! 멀리 잡으면, 1,400년이라고 이야기하는 성서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깐 66권의 성경이 무슨 60년 안에 쓰여젔다든지 100년 안에 다 쓰여진 책이 아니고, 몇 년 걸렸다고요? 1,200년이나 1,400년이 걸렸다는 겁니다. 그것도 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한 40명 되는데 한결같이 직업이 다 다르다는 겁니다. 그런데 1,200, 1,400년 걸쳐서 쓰여진 이 책을 오늘 우리가 읽어보니깐 내용 가운데 상충 되거나 반대는 내용이 없이 어떤 큰 한 주제를 가지고, 물 흐르듯 일관 되게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1,000년 전에 어떤 사람이 기록을 하고, 800년 전에 어떤 사람이 기록을 하고, 600년 전에 어떤 사람이 기록한 것을 다 모아보면 어떻게 내용이 물 흐르듯 일관 되게 흐를 수 있겠냐는 겁니다.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1.200년에 걸쳐서 기록이 되었지만, 기록한 사람마다 직업이 다 의사였다든지, 빵 만드는 사람이었다든지, 직업이 같으면 공통성이 있으니깐, 그러니깐 성경에 흐르는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을 할 수 있지만, 이렇게 40명인 되는 성경의 저자들이 한결같이 다 직업이 다릅니다. 의사도 있고, 어부도 있고, 농부도 있고, 세무사도 있고, 양치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각자 직업이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썼다면 어떻게 한 주제를 가지고 물 흐르듯, 일관 되게 내용이 전개가 될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이 1,200년 전의 사람이든, 800년 전의 사람이든, 하나님이 성령으로 감동을 시켜서 하나님의 생각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주장입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무슨 회고록을 쓰거나, 자서전을 쓰게 되면 대부분 자기에게 불리한 내용은 써요? 안 써요? 그것은 안 씁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 자기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이렇게 과정 했을 때 그 가문에 영의정도 있었고, 좌의정도 있었고, 이렇게 훌륭한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기록을 할 것입니다. 자기들의 선조들 가운데 무슨 역적질을 해서 처형을 당했다든지, 큰 범죄를 해서 무슨 귀향을 갔다든지, 그런 인물들이 있다면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이름 쓰겠어요? 안 쓰겠어요? 당연히 안 씁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빼고 좋은 인물들만 기록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은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 마태복음만 하더라도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메시아다.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마태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예수님의 족보를 이야기할 때도 좀 훌륭한 사람들만 주욱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서 읽는 사람이 역시 예수님의 조상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예수님의 가문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그래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성경에는 불리한 내용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이것이 만약 사람이 기록했다면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불리한 내용이 성경 안에 많은 것은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불리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다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기 때문에 그 불리한 내용을 기록하게 하셨을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여인들의 이름이 등장을 하는데, 5명의 여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여자들은 수에다 넣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이 몇 명 왔나? 이렇게 계산할 때 여자들은 계산을 안 합니다. 그만큼 여자를 하대한 것입니다. 그런 여자들을 족보에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특이한 것입니다. 그러면 언뜻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여자들은 수에도 넣지도 않는데 족보에 여자의 이름을 넣었다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여자들은 틀림없이 신사임당처럼 굉장히 훌륭한 여자들 일꺼야! 본래는 족보에 넣지 않지만, 여자들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렇게 훌륭한 여자들이 있다는 것을 일부러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서 여자들을 족보에다가 기록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다섯명의 여자들을 다 보면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사실 다 부끄러운 여인들입니다. 너무 창피해! 그런데 그런 여인들을 예수님의 조상이라고 다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여인의 이름이 다말입니다. 이름부터가 무슨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뭔가 다 말아 먹을 것 같은 이름입니다. 이 여인이 유다라고 하는 가문에 시집을 옵니다. 유다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엘이고, 둘째 아들이 오난이고, 셋째 아들이 셀라입니다. 그러니깐 다말은 유다 가문에 첫째 며느리입니다. 첫째 아들이 후사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 경우 유대 풍습에는 시동생이 그 형수와 결혼을 해서 후사를 낳아줘야 합니다. 만약에 형제 중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에서 누군가 결혼을 해서 후사를 이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제산이 어떤 가문에게 쏠리거나 한 지파에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도 있고, 신앙을 계속 전승시켜서 12지파 중에 사라지는 지파가 없이 12지파가 다 손속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그런 풍습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인 오난이 형수와 결혼을 해서 형님의 씨를 낳아주어야 하는데 오난이 어떤 생각을 하냐면 결국 내가 형수님에게 씨를 주어도 형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지, 내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깐 씨를 줘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씨를 안 줍니다. 그 행위를 하나님이 악하게 보시고, 오난을 그 현장에서 바로 죽입니다. 놀란 것은 유다입니다. 큰아들이 죽었는데 병으로 죽었는지, 사고로 죽었는지 몰라도 큰아들을 잃은 지가 얼마 안 되는데 둘째 아들까지 죽은 것입니다. 이제 아들이라곤 하나 남았습니다. 이 아이도 죽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이 있어서 이 며느리에게 차일피일,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안 주는 겁니다. 다말은 어떻게 후사를 낳아야 하는데 시아버지가 셋째 아들을 안 주니깐 어느 날! 창녀처럼 변장하고, 시아버지에게 접근합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라고 꿈에도 모르고 그냥 창기겠지! 하고 생각을 하고 며느리와 하룻밤을 보냅니다. 거기서 후사가 생겼다는 겁니다.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 보면 너무나 창피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해서 낳은 자식이 예수님의 조상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여인은 라합인데, 여호수아 2장에 보면 라합이라고 하는 여자는 여리고 성에 살고 있었던 기생입니다. 말이 좋아 기생이지,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몸 파는 여자입니다. 여리고 성에서 몸 팔아서 살아가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머리는 굉장히 똑똑했었던 같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 2명이 여리고성에 들어 왔는데 그 정탐꾼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분명히 이 땅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 분명해! 그러니 이 땅은 어느 날! 너희의 땅이 될 꺼야! 그러면서 그 정탐꾼을 숨겨주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 땅을 차지할 게 될 때 은혜를 베푼 것을 잊지 말고, 나를 살려 달라! 우리 가정을 살려 달라! 약조을 합니다. 그래서 살아남습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니 이방 여자인데 다가 몸 파는 여자가 좋다고 이스라엘 남자 중에 누군가가 결혼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낳은 자식이 예수님의 조상이라는 겁니다.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다음은 세 번째 여자는 룻이라는 여자입니다. 이 여자도 이방 여자입니다. 모압족속의 여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압족속을 얼마나 싫어했느냐? 신명기 233절말씀을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신명기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러니깐 하나님이 암몬과 모압족속을 엄청 싫어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족속의 여인이 다른 가문의 여인도 아니고, 예수님 족보의 여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더더군다나 네 번째 여자는 우리아의 아내 바세바입니다. 거기서 솔로몬을 낳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안 하고, 우리아의 여인에게서 바세바를 낳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바세바라는 여인은 멀쩡히 우리아라는 남편이 있었는데 다윗이 그 남편을 죽이고, 바세바하고 관계을 가져서 솔로몬을 낳았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너무 창피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왜 성경에다가 기록했을까?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조상들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왜?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굳이 우리 생각 같으면 안 해도 좋을 것을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에게는 사실 부끄러운 일이 있어요? 없어요? 예수님은 평생 부끄러운 짓을 하신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딱 하나 예수님에게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조상들입니다. 그 조상들 가운데 너무 부끄러운 할머니들이 많아! 예수님에게 부끄러운 일은 그것밖에 없어! 그런데 그것을 다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 그러셨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나에게도 감추고 싶은 그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내가 너희들에게 다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도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알아들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남에게 말하지 못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들이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 그 이야기를 했다가는 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깔 볼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사연들이 있지만, 평생 자기가 혼자 지니고 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절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는 하라는 것입니까? 주님에게는 하라는 것입니다. ? 나도 너희에게 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다 했는데 너는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안 해! 어떻게 친구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아니 나는 말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이야기, 수치스러운 이야기 솔직하게 다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방은 그런 것이 있으면서 이야기를 안 해! 그러면 친구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서는 숨기지 마세요! 한 번쯤은 주님 앞에 여러분들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다 하세요! 주님 저에게도 정말 꺼놓기 힘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들이 있습니다. 다 이야기를 하셔야 합니다. 주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래야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은혜를 우리가 마음껏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이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을 한 번도 고백한 적 없이 마음속에 담아 두고 살면 그것이 항상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도 그것을 다 누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 무거운 마음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셔서도 그 행복을 다 누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 무거운 짐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 내게로 와서 다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 앞에 다 털어놓으면 그때부터 자유함이 있게 되고, 그날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다 누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일을 위해서 주님이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다 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들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여자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한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신앙을 어떻게든 전승을 시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이들이 다 디딤돌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관심이 여러분! 어디에 있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분명히 이 여인들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할 여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받아 주시고, 허락하시는 것은 이들이 비록 그런 여자들이었지만, 그들이 유다 자손의 가문을 이어가게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데 다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그 여인들이 그것을 하나님이 높이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이제 재림을 하십니다. 그 재림하시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신앙을 계속 전승을 해서 다시 오시는 예수님도 그들을 디딤돌로 삼아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 말씀을 하나님이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 하면 모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모세가 정말 존경스럽기는 합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어떻습니까? 최소한 모세를 존경하는데 수치를 따져서 모세가 존경의 수치가 10이라면 적어도 여호수아는 10이 안 된다 하더라도 9이나 8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모세가 10이라면 여호수아는 1~2밖에 안 됩니다. 도대체 왜? 그러냐? 자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모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을 시켜서 40년 광야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들이 왜? 40년을 지났어요?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런데 정작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은 누가 해요? 여호수아가 합니다. 그러면 일로만 보면 사실 모세보다 누가 더 중요한 일을 했어요? 여호수아가 한 것입니다. 아무리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켰다고 하더라도, 광야를 함께 생활했다고 하더라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면 말짱 꽝입니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니깐 정말 중요한 일을 한 것은 누구야? 여호수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호수아는 그렇게 저평가 되고, 모세는 고평가가 되는가? 도대체 무슨 이유라는 겁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신앙을 전승을 시켰는데 여호수아는 그 신앙을 전수 시켜준 사람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가 한 일에 대해서 그렇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은 모세가 한일 보다는 누구 때문이냐면 여호수아 때문입니다. 모세는 가나안땅을 밟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낳은 여호수아가 그일을 했기 때문에 그 공도 다 누가 받는 겁니까? 모세가 받는 겁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들! 그러니깐 모세의 상급은 여호수아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전승시킨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못 했습니다. 여호수아 243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24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수아는 그 당대에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 거기서 끝났다는 겁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모세는 출애굽을 시켜서 광야 40년 지나면서 고생만 많이 했지 사실은 가나안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그 가나안땅이 주는 풍요로움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마음껏 누린 사람은 누구야? 여호수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보다는 모세가 더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이유는 모세에게는 여호수아가 있었지만, 여호수아에게는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꼭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어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그냥 다 가난 속에 살았습니다. 연탄불 갈고, 연탄가스 맡아가면서 우풍 심한 그런 집에서 일찍 일어나서 꽁꽁 언 세숫대야에서 세수하고, 그 추운 겨울날! 새벽예배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들은 이렇게 가난하게 살지만, 우리 자식들은 잘살게 해주세요! 많은 시간을 자식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들은 정작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은 풍요로움을 하나도 누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우리보다 더 높이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우리를 낳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들의 열매가 우리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들이 기도했던 풍요로움!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에서 누렸던 풍요로움을 우리는 다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다 우리는 만끽을 했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들의 신앙을 전승시켜줄 사람들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 교단에 있는 교회가 8,300개 정도 됩니다. 8,300개 되는 교회 가운데 중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47%입니다. 여러분들은 놀라지도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이야기해야 놀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깐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교회 2중에 하나는 중고등부가 없다는 겁니다. 신앙을 전승시켜줄 다음 세대가 없는 것입니다. 8,300개 교회 가운데 영아부가 없는 교회는 78.5%입니다. 강남에 있는 교회 중에 둘중에 하나가 주일학교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주 심각한 위기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때와 너무나 흡사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여호수아 때처럼 그냥 우리 때는 그냥 하나님을 잘 믿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평가는 우리가 얼만큼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에 있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그래서 많이 고민하셔야 합니다. 우리 입장이 여호수아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어떤 큰 어려움이 있을 때다든지, 하나님이 어떤 큰일을 행하실 때는 반드시 굉장히 큰 헌신을 요구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그렇게 결심하셨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어떻게 보면 무리한 요구를 하십니다. 그 헌신을 받으시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성령을 보내 주셨을 때 마가의 다락방의 120명의 성도들에게 10일 동안 집중해서 기도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 기도의 헌신을 받으시고, 이 땅에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는 하나님이 뭔가 우리에게 특별한 헌신을 요구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기도 중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우리 가운데 아브라함처럼 헌신하는 사람도 나와야 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기도했던 120명 성도 같은 사람들도 우리들 가운데 나와야 합니다. 그런 헌신을 통해서만이 신앙을 전승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서도 신앙을 전승시키시고, 우리 교회 적으로도 신앙을 전승시켜서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가문도, 우리 교회도 신앙이 전승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에게 주신 이 소중한 신앙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믿음을 저희 가운데 허락해 주옵소서. 그 신앙의 과정을 통해서 전승되게 하시고, 우리교회를 통해서 전승되게 하옵소서.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님! 저희에게 말씀해 주시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지 아브라함처럼, 마가의 다락방의 성도들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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